차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후보에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유력하다고 한다. 지난 6일 후보추천위원회 회의에서 5표를 얻지 못해 최종 후보는 안 됐지만, 추천위원 4명의 찬성표를 얻어 최다 득표를 했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인 김 부위원장은 공수처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을 뿐 아니라,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런 인사를 정치적 중립 의지가 필수적인 공수처장에 추천하다니 어이가 없다. 추천위는 19일 다시 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는데, 김 부위원장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시도는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는 여당과 야당이 각각 2명씩 지명하고, 당연직으로 대한변호사협회장, 법원행정처장, 법무부 장관이 참여하는 7인으로 구성된다. 지난 회의에서 김 부위원장에게 찬성표를 던진 위원은 여당 추천 2명과 한동훈 장관, 그리고 김영훈 변협 회장이나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가운데 한명으로 추정된다. 여당 몫 추천위원들이 김 부위원장에게 찬성표를 던진 것은 자가당착에 가깝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공수처 도입을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이 반대할 때 내세운 이유가 바로 ‘대통령 직속기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래 놓고 지금은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인사를 버젓이 공수처장으로 추천하다니 국민을 너무 우습게 아는 것 아닌가. 한 장관도 마찬가지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참모로서 공수처가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할 책임이 있다. 공수처는 검찰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봐주기 수사’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의 가치에 부합하는 기관이다. 그런데도 공수처장 자격이 전혀 없는 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지다니, 한 장관의 ‘공정’은 왜 늘 선택적인가.
공수처는 지금 ‘채 상병 사건 해병대 수사 외압’과 ‘전현희 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 등 대통령실과 감사원을 비롯해 윤 정부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뜩이나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김진욱 공수처장의 후임에 ‘친윤’ 인사가 임명되면 주요 사건 수사가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추천위는 공수처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적임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해야 한다. 한 장관과 여당 인사들의 각성을 도무지 기대할 수 없다면, 사법부와 변협을 대표한 추천위원들의 소임이 막중하다. 김 후보의 공수처는 없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