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이것은 가슴 졸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일까? 가슴 답답한 정상외교의 막장 드라마일까? 가슴 벅찬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실종된 것일까?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인근 해군사관학교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을 만나 한·미·일 3국 안보실장 대면 회의를 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3일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해,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의견을 교환했다. 서훈 안보실장과 정의용 장관이 같은 날 미국과 중국에서 각각 회담을 한 것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출범에 이어 바야흐로 화려한 외교가 꽃피기 시작한 것일까, 미-중 패권전쟁에 한국이 휘말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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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투키디데스의 덫’을 우려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록한 역사가 투키디데스를 소환한다. 아테네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것이 기존 강국이던 스파르타에 위협이 되어 ‘권력전이 전쟁’이 격발되었다는 것이다. 이 공식에서 아테네를 중국, 스파르타를 미국으로 치환하면 21세기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필연적인 미-중 패권전쟁에서 한국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질문한다.

사실 이런 ‘현실주의’적 질문은 이미 정답을 전제하고 있다.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에 중국이 도전하거나 도발한다면 군사동맹국의 선택지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이므로 ‘공산당 1당체제’인 중국과의 관계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도 추가된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문제이며, 그 결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미국에 ‘불려가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중국에 ‘불려가는’ 답답한 상황이 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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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 확실히 줄을 서는 것은 또 다른 답답한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의 동맹인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교역국이라는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다. 중국과의 교역 액수가 대미·대일 무역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는 압도적인 경제 현실 때문이다. 동맹의 손만 움켜쥐고 있으면 밥은 누가 먹여주겠는가. 한국과 중국은 이미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안보와 경제의 현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반론도 정답을 전제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의 손만 잡고 있을 수도, 중국과의 교역에만 목매고 있을 수도 없다. 최대한 양자와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양국의 협조는 필수적이지 않은가. 해서 ‘줄타기 외교’는 한국의 숙명이다. 중-미 관계가 긴장될수록 더 팽팽해지는 줄 위에서 펼치는 균형 외교는 미국도, 중국도 한국에 구애를 하는 삼각관계로 귀결된다. 바이든 정부와 시진핑 정부가 각각 문재인 정부의 안보·외교 수장과 동시에 회담을 연 작금의 모습은 이런 균형 외교의 백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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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그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샴쌍둥이’다. 머리는 달라도 몸뚱이는 하나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상정하는 세상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와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로 양분된 세계관이다. 이 두개의 질서는 상충되는 가치와 규범에 기초하고 있기에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가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경쟁적 세계관이다. 패권국가와 도전국가에는 무한 경쟁만이 선택지로 남아 있고, 그 이외의 국가들에는 양자택일을 하거나 양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만이 가능하다는 세계관이다.

미 하버드대의 중국정치학자 이언 존스턴은 그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복잡한 21세기의 국제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세계질서는 적어도 8가지 다른 질서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복합적 모습이며, 중국과 미국은 이 여덟개의 세계질서에서 각각 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 확실하게 줄을 서든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라는 선택지만 있는 답안지는 출제가 잘못된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가슴을 졸이는 선택만이 가능하다. 한반도가 나아갈 길은 잘못된 답안지를 거부하는 것이다. 국가 사이의 평화, 국가와 시민 사이의 평화, 시민과 시민 사이의 평화를 핵으로 하는 세계질서를 우리의 답으로 만들어낼 때 가슴 벅찬 한반도의 외교를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