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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정찬의 세상의 저녁] 지상의 방 한 칸

등록 :2020-08-25 17:06수정 :2020-08-26 02:41

그 집이 품고 있었던 ‘지상의 방 한 칸’은 다락방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지상의 방 한 칸’은 작가가 글을 쓰는 실제의 공간이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우리의 영혼이 희구하는 ‘존재의 아늑한 집’으로도 느껴진다.
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정찬 ㅣ 소설가

소설가 박영한이 위암과 힘겹게 투병하다 일산 백병원에서 59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 것은 2006년 8월23일이었다. 병에 깊이 침윤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문병을 거절했던 그는 숨지기 나흘 전 몇몇 지인들을 불렀다. 참혹하게 말라버린 그의 모습에서 그동안 그가 겪은 고통의 두께가 아프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기자이며 소설가인 조용호와의 힘겨운 대화에서 “문학이 암보다 더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가 위암 수술을 받은 것은 2003년 4월이었다. 수술 결과가 좋았다고 했다. 의사는 그에게 술과 담배를 끊고 몸 관리를 잘하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술을 끊지 못했다. 왜 술을 못 끊느냐는 질책 어린 나의 물음에 그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순간 안산 사리포구의 노천 탁자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을 때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첩첩 두메산골에서 땅을 갈고 짐승을 키우며 사는 자신의 모습이 간혹 환상처럼 떠오른다고 했다. 그가 젊은 시절 소설에 빠지기 전 그런 생활을 꿈꾸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와는 안산 예술인아파트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5년 넘게 이웃으로 살면서 술을 참 많이 마셨다. 저녁이 되면 아파트 근처의 들판처럼 휑한 거리에 드문드문 불을 밝히고 있는 포장마차에서, 공사장 함바집에서, 사리포구 노천가게에서, 갯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수인선 협궤열차의 무인역사에서, 아파트 외벽 계단에서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당시 안산은 안개와 들판과 협궤열차와 포구와 갯벌을 품고 있었다. 그 모든 풍경이 사라진 것은 1994년 시화방조제 완공과 함께 고잔 신도시가 건설되면서였다. 그와의 추억이 서린 사리포구는 아파트가 덮어버렸다.

1978년 장편 <머나먼 쏭바강>으로 이름을 알린 박영한은 2년 후 장편 <인간의 새벽>을 출간한다.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장편소설이 한국문학사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된 것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작가의 세계사적 관점과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밀도 높은 문장과 미학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편으로 소설 세계를 쌓아가면서 장편에 도전하는 대부분의 소설가들과는 표나게 다른 박영한의 행보에서 우직한 작가정신이 확인된다. 그의 우직함은 경제적 궁핍을 낳았고, 그 궁핍은 1984년 발표한 중편 <지상의 방 한 칸>에 촘촘하고 아름답게 담겨 있다.

이 소설에서 ‘지상의 방 한 칸’은 작가가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는 ‘방 한 칸’을 뜻한다. 그 ‘방 한 칸’을 찾아 헤매는 ‘나’의 여정은 슬프고 고통스럽다. 신혼 시절 노량진 국민주택 2층 다다미방 한 칸을 사글세로 얻어 살다 인천의 주공 13평짜리로 전세를 얻어 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첫 장편 <머나먼 쏭바강>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년 정도 글을 안 쓰는 평화를 누리다가 두 번째 장편 <인간의 새벽>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위층의 소음을 견디지 못해 박영한은 절로 피신한다.

첫 장편의 인세 수입이 끊기자 부산 교외의 두구동 묘목농장 안에 있는 단칸 셋방으로 이사한다. 칸막이도 문도 없이 그냥 노천으로 이어진 휑한 부엌 하나를 세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궁핍한 거주 공간이었다. 두 번째 장편은 1만부에 채 미달되는 판매로 막을 내린다. 두구동의 단칸방에서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어 농장주가 관리실을 비우는 날에는 거기에 들어가 썼고, 가을이면 분재용 비닐하우스나 빈 가축 막사에 밥상을 갖다놓고 썼던 세 번째 장편 <노천에서>의 판매는 더 초라했다.

그는 심기일전을 위해 두구동을 떠나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읍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가 짐을 푼 곳은 마구간을 개조해 방 두 칸을 들인 집이었다. 문제는 방음이 제대로 안 되는 집의 구조였다. 이웃의 온갖 소음들을 견디다 못해 근처의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데, 얼마 후 그 집의 소음도 만만치 않아 마을을 돌아다니다 언덕바지 숲속에 파묻혀 있는 집을 찾아내 거금 30만원을 들여 수리까지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반년이 채 안 돼 다시 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함께 세를 사는 건넌방 남자의 잦은 주사 때문이었다.

작가의 가족은 새로운 거처를 찾으러 길 위로 나선다. 그는 아내와 다섯살 딸과 함께 와부읍을 기점으로 퇴계원 양수리 마석 금곡, 멀리는 삼송리 원당 신장 시흥의 수리산까지 훑는다. 때로는 밤늦게까지 다녀야 했으므로 6, 7인분의 도시락을 싸들고 나온다. 그전에 갔던 데를 세 번 네 번 다시 가다 보니 복덕방 사람들이 아, 또 왔군 하는 표정을 짓는다. 워커힐 넘어가는 쪽과 망우리와 우이동 골짜기도 발품을 판다. 그다음은 시청 지하철을 기점으로, 부천 안양 수원 북한산성 과천 독산동 태릉 김포읍을 훑는다. 그의 눈에 서울은 팽창할 대로 팽창해져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보인다. 서울 변두리 너머의 경기도는 불도저와 전주들의 위세에 숲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등 붙여 살던 보금자리들이 사라지면서 호흡기 장애를 일으키는 듯하다.

“한 달 남짓을 나돌아다닌 셈인데, 아이가 함부로 칭얼대지 않는 것은 제 어미 아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긴요한 것인가를 어느덧 알게 된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이는 자고 깨면 제 어미한테 묻곤 했다. 엄마, 오늘은 또 어디 가? 으응, 전에 아빠랑 새우 잡으러 간 데 말이야. 시원한 강 있었지? 엄마, 갔던 데지 않아? 왜 또 거길 가? 아빠 공부방 아직 못 구했쩌?”

그들이 마침내 집 한 채를 ‘발견’한 것은 김포 행주대교 너머의 강변 마을을 사흘째 뒤진 끝이었다. 방 둘에 마루 하나 해서 400이었고 신식 슬래브의 새집이었다. 상대농지를 매립해서 지은 집이라 입식 부엌문을 젖히면 시원한 천수답과 그 뒤로 원두막을 겸비한 낮은 동산이 보였다.

“엄마, 아빠가 어디 갔지? 이 방에도 없구 저 방에도 없잖아? 으응, 아빤 하늘로 올라갔단다. 밥 먹을 때만 내려오지. 하늘루? 하늘에두 방이 있쩌?”

그 집이 품고 있었던 ‘지상의 방 한 칸’은 다락방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지상의 방 한 칸’은 작가가 글을 쓰는 실제의 공간이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우리의 영혼이 희구하는 ‘존재의 아늑한 집’으로도 느껴진다. 박영한은 암의 고통 속에서 어떤 ‘지상의 방 한 칸’을 꿈꾸었을까? 어쩌면 그에게 죽음이, 그가 알 수 없는 죽음의 저 먼 공간이 ‘지상의 방 한 칸’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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