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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발] 누가 박근혜를 ‘소환’했나? / 곽정수

등록 :2020-03-05 16:08수정 :2020-03-06 02:09

<b>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재판</b><br>뇌물 등 18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공개된 것은 지난 3월31일 구속된 뒤 53일 만에 처음이다. 공동취재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재판
뇌물 등 18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공개된 것은 지난 3월31일 구속된 뒤 53일 만에 처음이다. 공동취재사진

법원이 최근 소장을 보내왔다. 정동춘 전 케이스포츠재단 이사장이 <한겨레> 기자 15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2016년 9월 이후 자신을 ‘최순실 단골 마사지센터장’이라고 표현한 게 ‘명예훼손’이라는 주장이다. 재단 모금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었다. 법원도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해 기업 출연을 강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3년 반 동안 숨죽이고 있던 그가 왜 지금 나섰을까? “국정농단 세력들이 부활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도 우려를 거들었다. 지난 한달간 청원 참여자는 150만명에 육박한다.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4일 옥중에서 편지를 보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달라.”

‘탑골 지디(GD·지드래곤)’ 신드롬을 낳은 ‘양준일의 소환’은 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하지만 ‘박근혜의 소환’은 당혹감을 넘어 분노를 낳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고 국민의 신임을 배반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다”며 탄핵을 결정했다. 옥중에서 국정농단을 참회하기는커녕 정치개입에 나선 것은 헌정질서와 촛불민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곗바늘을 3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행위다.

미래통합당은 ‘박근혜 소환’의 일차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탄핵의 강’을 제대로 건너지 않았다. 촛불 민의를 반영한 미래비전과 혁신도 제시하지 못했다. 국가적 재앙인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도 오직 ‘반문재인’ 정서 확산에만 올인하고 있다. ‘박근혜 소환’의 토양을 만든 일등 공신이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은 처음부터 탄핵에 승복하지 않았다. “모든 결과를 내가 안고 가겠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 탄핵 뒤 청와대를 떠나면서 발표한 입장문이 잘 보여준다. 당시 국민 열명 중 아홉명이 탄핵에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시했다. ‘옥중 편지’는 예고된 일이다. 다만 촛불세력의 분열과 약화를 기다렸을 뿐이다.

그럴수록 문재인 정부는 조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느덧 허리띠가 느슨하게 풀렸다. 더딘 개혁 성과, 부동산 정책의 실패 탓도 있지만 검찰개혁을 내세워 ‘조국 수호’를 고집한 게 결정타가 됐다. 진보는 물론 중도층과 일부 보수까지 망라했던 촛불전선이 균열됐다. ‘박근혜 소환’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내로남불’ ‘이중성’ 비판에 직면한 진보의 상처는 컸다. 진보 성향의 한 인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남들처럼 권력이나 재력은 없어도 항상 옳은 쪽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컸다. 민주당을 지지해온 것도 단지 좋아서가 아니라 옳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부심이 사라졌다.”

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여부를 놓고 막판 고심을 하던 지난해 9월 초 여권 고위인사와 만났다. 그는 ‘조국 수호’ 강행에 대해 “여권 핵심의 ‘총선 필승론’에 대한 자신감이 워낙 강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이 무능해 여당이 조금 실수해도 총선에서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권에서는 “문 대통령은 운이 좋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야당이 무능하면 여당에는 좋은 일인지 모르지만 국민은 불행하다. 건강하고 능력있는 여야가 경쟁하는 게 최선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한 게 무색해졌다.

무능한 야당에 기댄 총선 필승론은 “집토끼만 잘 지키면 된다”는 오판을 낳았다. 이후 검찰과의 소모적 갈등과 임미리 교수 칼럼 고발 등을 통한 ‘문빠’(맹렬 지지층) 논란으로 이어지며 ‘오만한 여당’으로 각인됐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옥중 편지에 “총선을 앞두고 전해진 천금 같은 말씀”이라고 화답했다. 미래통합당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계속 국정농단 세력과 손을 잡고 촛불 민의를 부정한다면, ‘박근혜 편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도 균열된 촛불혁명의 대오를 다시 복원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 대통령도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끝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나라다운 나라’의 건설은 국민 다수가 함께 동참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곽정수 ㅣ 논설위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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