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명
영남팀장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윤동주 시 ‘또 다른 고향’의 한 구절이다. 밤을 새워 어둠을 향해 짖는 (지조 높은) 개의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 시인 스스로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의지를 다지고, 소극적이 돼 가는 자신의 나약한 태도를 꾸짖어 경계하는 치열한 자기성찰의 자세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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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을 빼면 이 시에 나오는 ‘지조 높은 개’는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짖어 경계하거나 고발하는 언론 또는 검찰·경찰 등 사정기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런데 최근 자유한국당과 경찰 사이에 ‘지조 높은 개’가 아닌 ‘사냥개’ ‘미친개’ 공방이 벌어졌다.

발단은 울산경찰청의 김기현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측근비리 수사와 관련해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이 경찰을 ‘정권의 사냥개’로 비유하며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렸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비난하면서 비롯됐다. 이에 서울·부산·광주 등 곳곳에서 경찰관과 경찰 출신 지방선거 후보의 1인시위와 펼침막·손팻말 시위가 이어지고, 경찰 내부통신망 등에 “정작 사냥개는 윗사람 의중대로 움직여 환심 사려는 장제원 의원”이라는 글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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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을 포함한 검찰과 국정원 등 사정·권력기관이 ‘정권의 사냥개’로 비난받게 된 것은 사실 한국당의 원류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집권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드러난 국정원 댓글조작 등 관권 선거개입과 표적·편파수사에 대한 것이 ‘원조’ 격이다. 멀리는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까지 거슬러갈 수 있지만, 당시 집권당도 결국 한국당과 한나라·새누리당의 원류다. 경찰을 비롯한 사정·권력기관을 자당 정권의 ‘충직한 사냥개’로 만들었던 당사자들이 이제 정권이 바뀌어 야당이 됐다고 해서 자신들 과오는 덮어둔 채 자당 후보의 선거에 불리한 수사를 한다는 이유로 경찰을 빗대 ‘사냥개’라고 비난하고 나선 건 염치없어 보인다.

한국당과 경찰의 ‘사냥개’ 공방은 한국당 지도부의 무마로 일단 수그러든 모습이지만 울산경찰청에 대한 한국당의 ‘뭉둥이질’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당은 지난달 말 울산경찰청이 신청한 김기현 시장 동생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자 바로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을 직권남용과 선거개입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황 청장이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의 울산시장 유력후보인 송철호 변호사를 만나고, 주말에 지역 경찰협력단체와 골프를 친 것과 관련해서도 각각 ‘여권과 유착’, ‘접대’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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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수사 중인 김 시장 측근비리는 동생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이 다가 아니다. 동생은 물론 형과 친인척, 비서실장 등 모두 8명이 실타래처럼 변호사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알선수재, 직권남용 등 혐의로 얽혀서 입건돼 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선량’의 측근들이 이처럼 온갖 비리의 복마전이 돼 있다면 선거에 앞서 더욱 그 진상이 명백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경찰 수사가 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것을 두고 한국당이 무조건 ‘정권과 유착한 선거개입’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경찰의 “과도한 흠집 내기로 수사 흔들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경찰도 ‘정권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시민·국민적 대의와 요구’에 따른 공명정대한 수사를 통해 ‘사냥개’ 논란을 불식하려는 치열한 자기성찰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울산경찰의 수사가 앞으로 경찰 위상을 정권의 ‘사냥개’로 볼지, 국민의 ‘지조 높은 개’로 볼지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tms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