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나미술가

심장 떨리는 공포영화, <미저리>, <캐리>, <샤이닝>의 원작자인 스티븐 킹은 공포 스릴러 소설의 대가이다. 킹은 <죽음의 무도>에서 공포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잘린 목이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볼 때 느끼는 ‘역겨움’(The Gross-out), 공룡 크기의 거미들이나 죽은 사람이 주변을 돌아다닐 때 느끼는 ‘무서움’(The Horror),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보니 물건들이 모두 비슷한 물건으로 바뀌어 있음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The Terror)이 그 분류 유형이다. 나는 이 중에서 ‘두려움’에 대한 정의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데, 익숙한 것이 조금 바뀌었을 때 만들어내는 감각의 환기와 그 충격이 발생시킬 수 있는 질문과 변화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읽기 때문이다. 미술 작가들도 익숙한 것을 약간 다르게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만들곤 한다.

로만 온다크
로만 온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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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미술가 가브리엘 오로스코는 1993년 미국 뉴욕에서 연 첫 개인전에서 <홈 런>(Home Run)을 발표한다. <홈 런>은 전시장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 창가에 오렌지를 설치한 작업이다. 관객은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미술작품을 볼 수 없다. 대신, 창문 너머로 보일 듯 말 듯, 원래 그런 듯 아닌 듯, 창가마다 무심하게 놓인 작은 오렌지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관객이 오렌지를 하나 발견하는 순간, 다른 모든 집의 창가에도 똑같이 오렌지가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불가해하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주는 감각적인 혼란과 충격은, 그것이 작가가 연출한 작업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의미있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미술작품은 크고 예쁘게 잘 만들어져야 하며, 잘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미술은 일상적 순간과 어떻게 다른가? 미술작품은 미술관 안에 안전하게 설치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작가는 오렌지를 올려놓는 미세한 제스처로, 이 모든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며, 전통적인 미술작업의 문법을 흔들어 놓는다.

슬로바키아 작가 로만 온다크의 2003년 작업 <좋은 때, 좋은 기분>도 일상적 상황을 살짝 뒤튼 퍼포먼스 작업이다. 온다크는 퍼포머들을 고용하여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의 브이아이피(VIP)실 앞에 줄 세워 놓는다. 줄 서는 문화가 익숙한 런던에서 이 퍼포먼스는 런던의 매일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관객들은 줄어들지 않는 줄과 바뀌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편함과 혼란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미술작업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이 퍼포먼스의 상황이, 아무리 줄을 서 있어도 브이아이피실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자신들의 현실과 똑같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온다크는 일상적인 상황을 미술 안으로 슬며시 가져와서, 관객에게 미술 구조 안에서의 계급과 자본 관계를 똑똑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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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스코와 온다크의 작업은 익숙한 일상을 미술작업과 겹쳐 놓음으로써 혼란스럽고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관객들은 낯설고 껄끄럽다고 느낀다. 이 불안한 감정은 스티븐 킹이 말한 ‘두려움’과 비슷한 결을 갖는데, 중요한 자각의 순간을 동반한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왜 불편한지 질문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새롭게 바라본 세상은 더 이상 이전의 것과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달라진 세계에서 비로소 다른 질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

변화는 어색함과 ‘두려움’과 함께 시작되지만, 결국 다른 관점으로 새로운 질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겨레>가 새롭게 구성할 세계를 기대하면서, 그동안 미흡한 글들을 쓸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읽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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