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나
미술가
나는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보다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더 좋아한다. 애정하는 귀신 영화 중 하나가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검은 물밑에서>이다. 이 영화는 딸과 함께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싱글맘 요시미가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무서워진다. 이사 온 집 천장에서 끊임없이 물이 떨어지고, 수돗물에서는 시커먼 머리카락이 딸려 나온다. 알고 보니, 이 모든 사달은 엄마 없이 혼자 집에 돌아오던 아이가 아파트 옥상 물탱크에 빠져 죽음으로써, 귀신이 되어 떠돌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귀신이 딸을 해칠까 봐 두려웠던 요시미는 죽은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하며, 물탱크에 빠져 죽는다. 영화는 죽은 요시미 귀신이 딸 앞에 나타나, 엄마 없이 혼자 자라게 한 것을 사과하고, 서로 화해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이 영화가 유난히 무서웠던 건, 싱글맘의 현실이라는 익숙한 공포를 바닥을 알 수 없는 축축함이라는 불쾌한 감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죽은 아이나 요시미 귀신보다, 양육권을 위해 요시미를 신경증 환자로 몰아가는 남편과, 천장을 고쳐달라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관리인, 그리고 모든 것을 엄마의 잘못과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적 서사 구조가 더 공포스러웠다. 원한이 풀어지자 제자리로 돌아가는 귀신들은 차라리 애잔했다고나 할까. 삼청동 국제 갤러리에서 ‘안녕 安寧 Farewell’이라는 제목으로 전시 중인 박찬경의 작업에도 이런 친숙하고 마음이 가는 귀신이 많이 등장한다.
박찬경은 ‘한국 근대의 생채기 풍경들과 그 이미지들의 맥락을 따지는’ 작업을 해온 작가이다. 박찬경에게 귀신은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소외되고 상처 입은 존재들이며, 급속한 발전과 변화의 과정 안에서 잊히거나 가려진 역사와 정신, 전통을 상기시키는 존재들이다. ‘안녕 安寧 Farewell’에서 전시 중인 비디오 작품, <시민의 숲>에는 오래된 법복을 입은 인물들, 사형수 복장의 인물들, 예전 군복을 입은 인물들, 무녀, 형사, 간첩, 할머니, 교복 차림의 인물들이 나온다. 이들은 동학혁명부터, 일제시대, 전쟁과 분단,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에서 희생된 수많은 죽음을 상기시킨다. 이들은 선선한 표정으로 각자 숲을 거닐기도 하고, 모여 앉아 웅성거리기도 하고,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추기도 한다. 강을 건너는 꽃상여나 무당의 이미지는 이들이 확실히 귀신이라는 느낌을 준다. 마지막에 모든 인물이 무당의 접신 도구인 신장대를 너풀너풀 흔드는 장면은 이 귀신들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인사를 하는 듯하다.
훌훌 숲을 통과하는 박찬경의 귀신들은 무섭지 않다. 요시미나 죽은 아이가 그랬듯이, 이 귀신들은 우리와 닮은 모습이며, 공감 가는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영화 <검은 물밑에서>에서 남성 중심적 질서 안의 싱글맘의 현실이 진정한 공포였듯이, 박찬경의 영상에서도 정말 무서운 건 따로 있다. 귀신보다, 이들을 귀신으로 만든 전쟁과, 국가 폭력, 사회적 소외가 더 사무치게 무섭다. 박찬경은 이 애처로운 귀신들을 우리의 현재로 ‘안녕’ 불러냄으로써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리게 한다. 그리고 이들과 한바탕 놀고, ‘안녕’ 잘 보내줌으로써, 정서적 교감을 통한 화해를 시도한다.
귀신은 우리의 일부이다. 완벽히 이질적인 외부인인 외계인과는 사뭇 다르다. 귀신은 국가 권력과 사회적 폭력에 의해 밀려나고 상처 입은 우리의 조상이며, 이웃이다. 따라서 귀신을 자꾸 말하고, 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다. 이 가려진 타자들에 대한 공감과 화해는 우리의 현재를 지속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누가 이들을 억울한 귀신으로 만들었는지, 그래서 무엇이 정말 무서운 것인지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