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1970년대처럼 경제가 초고속성장을 해도 인권이 구조적으로 지켜지지 못하는 나라는 어차피 폭력의 왕국일 뿐입니다. 반유신 투쟁에 투신하시고 인권변호사를 하신 바 있는 대통령님께서는 이 부분을 저보다 백배 더 잘 아실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억류피해 조사와 피해자 구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양심수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유신 시절부터 이어져온 민주화투쟁의 구호 중 하나가 바로 양심수 석방이었는데, 수십년이 지나도 수백명의 양심수가 계속해서 이 나라에서 옥고를 치르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무엇보다 먼저,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외교·안보 차원에서도, 사회·경제 차원에서도 매우 어려운 시기에 집권하셨는데, 이제부터 처리하셔야 할 일은 태산 같을 겁니다. 상당 부분은 전 정권이 남긴 적폐지만, 여태까지 한국이 취해온 경제적 모델이라든가, 이미 고정돼 있는 한국의 국제정치적 위치로 말미암은 본질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여태까지는 수출주도형 경제 모델의 테두리 속에서 국내 재벌기업들이 비정규직이나 하도급 업체 노동자들의 피땀을 쥐어짜 가면서 수출경쟁력 배양에 올인해왔는데, 장기 공황 여파로 세계무역 전체가 위축되면서 이 모델 자체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들이 안정된 신분과 소득, 여유를 확보해 다 같이 내수를 늘릴 수 있는, 내수주도형 모델로 이행해야 할 터인데,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금처럼 제조업·가계빚·청년실업 등의 복합위기가 당장이라도 급습할 것 같은 상황에서는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중·미 사이의 경쟁이 잘못하면 격렬해질 수 있는, 불안한 국제환경 속에서는 한국의 대미관계 구도상 그 주권이 사실상 제한돼 있다는 부분은 향후 한반도 평화와 생명을 크게 위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모델 수정, 곧 불어닥칠 위기에의 대처, 국가주권 회수 등등 대통령으로서 하실 일은 정말 산 넘어 산입니다. 그래도 이 와중에서도 꼭 먼저 챙겨주셨으면 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참담한 인권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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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문재인 대통령님에게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궁극적인 이상은 대통령님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왼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저와 대통령님 사이에서 공유되는 부분이 하나는 있습니다. 바로 인권입니다. 인간 사회에서의 삶의 질은 결국 인권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아무리 주요 생산시설이 공유화되어도 그것만으로는 ‘사회주의’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자,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어야만이 비로소 사회주의 같은 말을 꺼낼 수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1970년대처럼 경제가 초고속성장을 해도 인권이 구조적으로 지켜지지 못하는 나라는 어차피 폭력의 왕국일 뿐입니다. 반유신 투쟁에 투신하시고 인권변호사를 하신 바 있는 대통령님께서는, 이 부분을 저보다 백배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칫 간과되어 잊힐 수 있는 몇 가지 인권침해 사건이 있기에 만사를 제쳐놓고 이에 대해 대통령님의 주의를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적폐 중의 하나입니다.

대통령님도 기억하시겠지만,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정권은 ‘북한 식당 여종업원 집단 귀순’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여종업원 12명이 국내에 들어왔지만, 곧바로 각종 이상징후가 감지되었습니다. ‘귀순’의 동기를 밝히는 기자회견도 없었고, 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접견 신청도 기각되었고, 또 사회로 배출되었다는 여종업원들의 변호사나 언론 접촉조차 차단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집단 귀순’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여종업원들이 일했던 북한 식당의 전 지배인은, 탈북 과정에 국가정보원이 여비를 대주는 등 개입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부분을 종합해보면, 이 탈북이 여종업원 모두의 자유의사라기보다는 국가정보원과 그에 협력하거나 강제당한 지배인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개연성은 호소력을 얻게 됩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좋은 말로 표현하면 ‘비자발적인 탈북’이겠지만, 더 심하게 표현하면 국가가 개입한 인신매매에 가까울 것입니다. 국내·국제법이나 인권의 차원에서는 대단히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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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님,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입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칠 줄 모르는 것이 정말로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라는 <논어>의 말씀을 익히 아시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일단 이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여 만일 강제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포착된다면 피해자에게 북송의 자유를 부여하고 범죄행동의 책임자(들)를 처벌하고 국가 명의로 공개 사과하면 일석이조가 될 것입니다. 인권 신장의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또 그렇게 해서 지난 10년간 얼어붙어버린 남북관계에 큰 물꼬를 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인권이 자주 비판되지만, 사실 북한 공민에 대해서 우리가 인권을 지키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북한인권의 발전에도 참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분단체제에서는 양쪽 인권 상황은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쪽에서 국가가 인권침해를 수정하는 그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전례를 남기면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알려져 북한 간부층도 무시하고 덮을 수만은 없는 선례가 될 것입니다.

이참에 북한 공민에 대한 반인권적 억류로 의심을 받고 있는 한 가지 사례를 더 들겠습니다. 바로 2011년에 국내로 들어온 ‘평양 아줌마’ 김련희씨입니다. 김련희씨 자신은 브로커에게 속아서 잘못 들어왔다고 주장하며 줄곧 북송을 요구해 왔습니다. 실제 그랬을 수도 있고 또 한번 탈북하고 나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어떤 경우라 해도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든 남북 평화·상생의 차원에서든 김련희씨의 북송 요구를 수용하는 게 정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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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께서 잘 아시다시피 유엔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는 그 누구도 본국에 귀환할 권리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명기되어 있습니다(12조4항). 김련희씨의 북한 국적이 말소되지 않는 이상 김련희씨에게 북한은 ‘본국’이며 북송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같은 규약에서는 가정에 대한 보호의 의무도 명기되어 있는데(23조1항), 김련희씨는 지금 남편, 자녀와 생이별을 당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신 만큼 이런 경우에는 국가가 마땅히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이해가 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잘 아시듯이 이제 거의 인종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흉악해진 대북 공포·혐오증은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많은 소수자들의 인권을 압살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약 3만4천명에 이르는 소위 ‘조선적’ 재일조선인들의 한국 입국권입니다. ‘조선적’은,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렇게 한 동기는 각양각색입니다. 재일조선인 사회의 민족교육·문화 계승에 미친 북한·총련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그렇게 한 사람도 있지만,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분단체제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동기야 각자 다르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들의 한국 입국이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은 공통점입니다. 대부분이 남한 지역 출신인 그들에게 고향 방문, 친척 상봉 권리가 분명히 있는데도 말입니다. 작가 김석범이나 역사학자 정영환의 재작년과 작년 입국 불허는 국제적 스캔들로 비화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부터 적폐 청산이 이루어지자면 조선적 재일조선인 모두를 “잠재적 종북”이라고 불신하여 그 인권을 짓밟아온 이런 대표적 실정도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님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억류피해 조사와 피해자 구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양심수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유신 시절부터 이어져온 민주화투쟁의 구호 중 하나가 바로 양심수 석방이었는데, 수십년이 지나도 수백명의 양심수가 계속해서 이 나라에서 옥고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석기 전 의원, 한상균 위원장처럼 이미 전세계 인권운동가들에게 알려진 양심수와 함께 수백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국가보안법 피해자, 노동계 인사들이 여전히 감옥을 메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일까요? 부디 출입국과 신체, 양심, 결사,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써 주시고 ‘인권입국’(人權立國)의 정신으로 앞으로의 5년을 보내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