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는 놀랄 정도로 정확한 영어와 세련된 매너로 손님을 맞았다. 게다가 가지런히 정비된 시내 곳곳은 서구 언론을 통해 접했던 헐벗고 가난하며, 독재로 신음하는 짐바브웨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다시금 믿어온 ‘사실’의 대부분이 현 세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구성물에 불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아프리카는 우리의 인식세계에서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한국 사회가 상상하는 세계는 강대국, 특히 미국 중심의 서구 사회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글로벌’의 의미는 서구적 가치와 시스템의 동의어이지, 결코 서구 밖의 세계와의 연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즉, 우리의 ‘세계’는 단 한 번도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인류 전체를 의미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포함한 제3세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고, 그 면면도 다양하다. 그 기원은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탈냉전 등을 표방한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이고, 현재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지역의 120여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동맹회의가 대표적이다.
비동맹회의는 강대국 중심의 국제연합(유엔)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과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잔재가 현재 대부분의 제3세계 사회문제의 근간이 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로 그 이름을 바꿔 계속되어온 제국주의가 바로 현 제3세계의 비참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비동맹회의는 단순히 서구식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를 완성하는 것으로는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간파하고, 반제국주의와 지역화를 통한 새로운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제3세계에서의 북한은 ‘정상국가’로 그 입지를 굳건히 해왔다. 상당수의 아프리카 국가는 제국주의 청산을 가장 급진적으로 이루어낸 사례로 북한을 평가할 뿐만 아니라, 핵실험과 같은 북한의 최근 행보 또한 탈식민과 자주권의 맥락에서 상이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만큼 주체의 위치와 인식의 지평에 따라 동일한 현상에 대한 전혀 다른 이해와 해결방안 도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탄핵심판에 따라 대선 시계가 빨라지자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지난 수년간 악화일로를 걸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기적 정책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북한에 대한 한국 사회 인식의 대전환이다. 우리가 평화, 공존의 한반도를 꿈꾼다면 강대국 중심의 세계를 해체하고, 제3세계를 포함하는 진정한 ‘글로벌’로 사유의 폭을 확장해야 한다. 예컨대 공백으로 남아 있는 세계의 반쪽을 경유하여 북한을 사유하면 현 상황이 단순히 ‘미친’ 김정은 정권으로‘만’ 환원될 수 없고, 그 해결방안 또한 불평등한 국제질서의 변화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단순히 북한을 이해 불가능한 국가로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행보의 역사적 맥락을 세계 질서의 불균등성과 제3세계가 공유하는 현실의 복잡성을 고려하여 재해석해야 한다.
트럼프의 집권은 미국 패권의 몰락을 의미한다. 물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눈치만 봐온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혼란과 고통의 시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감아온 한쪽 눈을 마저 뜨고 마침내 두 눈으로 ‘온전한’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통해 어쩌면 우리의 반쪽인 북한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우리의 미래를 불평등한 세계 질서에 포박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