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나
미술가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조이 레너드, 1992년 미국 대선 기간에 배포된 유인물 복사본). <그런가요 4호: 급진적 기대>(‘미디어시티 서울, 2016’)에서 발췌한 이미지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는 미국의 미술가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이며, 1980~90년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였던 조이 레너드가 1992년 아일린 마일스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지지하기 위해 쓴 글이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로 시작하는 레너드의 글은 2010년 스웨덴 의회에 극우 정당의 진출을 비판하기 위해 스웨덴 여성 예술가들에 의해 낭독된 것을 시작으로, 많은 나라에서 번역되어 단단하게 읽히고 있다. 이 글은 지난 10월 미국 대선을 몇 주 앞두고,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 공원에 약 6m×9m에 이르는 사이즈로 인쇄, 설치되기도 하였다. 레너드의 이 명문은 탄핵 요구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며 읽으면, 더 절절히 사무친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물질을 내뿜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곳에서 성장하여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 레너드가 원하는 레즈비언 대통령은 실제 레즈비언인 마일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심 기득권의 인물이 아닌, 주변부의 소외계층의 인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가장 낮은 바닥에서 절망해 봤고 차별당해 봤기 때문에, 그런 삶이 지르는 마른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인권과 평등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독재자의 딸로 태어나 온갖 특권을 누리며 자랐고, 늘 중심 기득권에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낮은 사람들의 편에 서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 말이다.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병원에서, 교통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줄 서본 경험이 있는 사람, 실직자, 명예퇴직자가 되고, 성희롱을 당해본 경험이나 동성애자로서 학대를 당하고 추방당한 경험이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깔깔한 현실을 겪어봤기 때문에, 뇌물을 받고 재벌과 권력의 부역자들을 위해 우리가 가진 약간의 기회와 희망마저 빼앗는 것이 얼마나 비열한 짓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그리고 “사랑을 하고 상처를 입어본 사람, 섹스를 존중하는 사람, 실수를 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은 사람을 원한다.” 잘못을 했을 때 인정할 수 있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할 수 있으며,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합당한 처벌을 기꺼이 받을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이후의 특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극우 보수 권력의 승계와 영화를 위해, 국민과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썩은 판을 다시 짜는 저열한 대통령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일들이 불가능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 대통령은 항상 광대여야 한다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왜 대통령은 항상 창녀가 아니라 창녀를 사는 남자여야 하는지, 항상 노동자가 아니라 간부여야 하는지, 항상 도둑질을 하면서도 결코 처벌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태어날 때부터 권력과 특권의 중심부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대통령의 무능력함과 부도덕함에 절망감을 느끼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시험을 통과했다는 정치인들의 파렴치함에 치가 떨리며, 공부 잘한다고 칭찬만 들어봤을 교수들과 지식인들의 더러운 권력에의 기생이 부끄럽다. 왜 우리는 항상 더 좋은 대학을 나오고,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나은 사람들이라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왜 그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저질러도, 항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며, 처벌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배우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을 원한다. “두 명 중 덜 악랄한 자가 아닌 다른 대통령을 원한다.” 자본과 권력의 비열한 사기꾼들을 나는 더 이상 대통령으로 원하지 않는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조이 레너드, 1992년 미국 대선 기간에 배포된 유인물) 원문: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물질을 내뿜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곳에서 성장하여 백혈병에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 열여섯 살에 낙태를 경험했던 대통령을 원한다. 두 명 중 덜 악랄한 자가 아닌 다른 대통령 후보를 원한다. 인생의 마지막 사랑을 에이즈로 잃어버린 사람, 아직도 누우면 매일 눈 앞에서 그 모습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 그를 품에 안고 있는 그런 대통령을 원한다.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병원에서, 교통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줄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실직자, 명예퇴직자가 되고, 성희롱을 당해본 경험이나 동성애자로서 학대를 당하고 추방당한 경험이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무덤에서 밤을 지새고 자기 집 잔디밭에서 십자가가 불태워지는 걸 보고 강간에서 살아남은 그런 사람을 원한다. 사랑을 하고 상처를 입어본 사람, 섹스를 존중하는 사람, 실수를 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은 사람을 원한다. 나는 흑인 여성이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 충치가 있고
태도가 안좋은 사람,
그 역겨운 병원 밥을 먹어본 사람, 다른 성(性)의 복장을 하고 마약을 해보고 치료도 받아본 사람을 원한다. 시민 불복종을 실천해 본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일들이 불가능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 대통령은 항상 광대여야 한다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왜 대통령은 항상 창녀가 아니라 창녀를 사는 남자여야 하는지, 항상 노동자가 아니라 간부여야 하는지, 항상 도둑질을 하면서도 결코 처벌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