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논설위원
“비극이란 어마어마한 영화를 누리다가 비참하게 몰락해 최후를 맞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가 내린 이 정의에 딱 들어맞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맥베스>다. 이 작품은 1606년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궁정에서 초연됐다. 주인공 맥베스의 영광과 추락을 보면서 궁정 사람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음울한 분위기와 통렬한 메시지를 보건대 이 비극은 400년 전의 잉글랜드 궁전이 아니라 오늘의 청와대에서 상연하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덩컨 왕의 명을 받들어 반란을 제압한 맥베스 앞에 세 마녀가 나타나 말한다. “장차 왕이 될 분이여, 만세!” 이 한마디가 맥베스의 마음에 야망의 불을 지른다. 맥베스는 잘 싸우는 전사이지만 내면은 단순하고 심약한 사람이다. 간 큰 맥베스 부인은 남편의 약점을 찔러 투지를 부추긴다. “당신은 위대한 것을 바라지만 그 일에 필요한 사악함이 없어요.” 맥베스 부인은 남편의 귀에 마키아벨리의 주문을 속삭인다. “겉으로는 순진한 꽃처럼 보이세요. 하지만 그 아래에서 독사가 돼야 합니다.” 맥베스는 마음을 다잡고 행동에 나선다. 맥베스 부부의 손은 선량한 왕의 피에 벌겋게 젖는다. 왕좌에 올랐지만 맥베스의 내면은 불안으로 편할 날이 없다. 맥베스는 죄로 물든 제 손을 보며 혼잣말한다. “대양의 물을 다 쏟아부어도 이 피를 씻어낼 수 없으리라.” 불안은 폭정을 낳고, 정당성 없는 군주를 향한 저항의 불길이 번진다.
이쯤에서 통치의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린다. 자연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밀어올린 힘은 비명에 간 아버지 박정희의 유령과 보수를 참칭한 기득권 세력의 탐욕이었다. 국가기관의 더러운 촉수가 선거판을 농락했다. 그리고 여기에 최순실이라는 무녀가 덧붙여져야 한다. 맥베스의 마음에 야심을 심어준 마녀들과 야심을 실행할 용기를 준 맥베스 부인의 역할을 동시에 한 것은 최순실이라는 영혼의 멘토였다. 20대 시절의 박근혜 정신을 지배한 최태민의 후계자가 최순실이었고, 1998년 박근혜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왔을 때 한 아파트에 살며 모든 것을 봐준 사람이 최순실이었으며, 대통령이 된 뒤에는 연설과 정책을 배후에서 감독한 사람이 최순실이었다. 최순실은 박근혜의 ‘혼’이었고, 대통령의 마음에 주둔한 ‘우주의 기운’이었다. 그 우주의 기운이 독가스가 돼 나라를 휘젓고 다녔다. 가는 곳마다 성한 것이 썩어 문드러졌다.
반란에 휩싸인 맥베스는 한 번 더 마녀들을 찾아간다. 마녀들은 맥베스 성 앞의 버넘 숲이 맥베스를 향해 다가오기 전에는 망하지 않으리라고 예언한다. 땅에 붙박인 버넘 숲이 다가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서 최후의 힘을 얻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일으킨 해일을 어떻게든 모면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해일은 진즉 방파제를 넘었다. 맥베스의 믿음은 버넘 숲의 나뭇가지들을 꺾어 위장한 군대가 밀어닥치자 맥없이 무너진다. 애초에 맥베스는 앉아서는 안 될 자리에 앉았고 입어서는 안 될 옷을 입었다. 반란군 지도자 앵거스의 대사대로 ‘거인의 옷을 훔쳐 입은 난쟁이 도둑’이 맥베스였다. 포위된 궁전에서 맥베스는 탄식한다. “인생이란 그저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에서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시간을 보내다가 더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게 되는 가련한 배우, 의미 없는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백치의 이야기.”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몸에 맞지 않는, 너무 큰 옷을 입고 거닐던 ‘그림자 대통령’에게 남겨진 마지막 대사가 아니고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