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정치 에디터

여전히 신음하는 농촌의 현실을 아느냐고, 대통령 공약대로 폭락한 쌀값 좀 올려달라고 백남기 농민은 서울의 거리로 나선 참이었다.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때 거리로 나서는 건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이자 관례다. 그런 농민을 공권력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정부는 백번 천번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다. 하지만 정부는 명백한 사망 원인을 어떻게든 비틀어보려 발버둥치며, 유족들의 반대에도 그를 차디찬 부검대에 올리려는 반인륜을 저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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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뻔뻔함은 백씨가 ‘불법’ 시위를 했다는 점에 기대고 있다. 공공질서라는 명분 아래 시위를 옥죄는 촘촘한 법을 만들어놓고, 이를 어기기만 하면 그가 무엇을 위해 시위에 나섰는지는 묻어버린 채 그에게서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빼앗아 ‘이등 시민’으로 전락시키는 게 권력의 수법이다. 민주주의는 법치 아니냐는 지극히 형식적인 논리를 들이대며, 국민의 고통과 호소에는 눈·귀를 닫는다.

#그런데_우병우는? 법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고도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는 권력이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법’이 아닌 ‘관례’라는 잣대를 댄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국정감사 출석 요구에 청와대는 “민정수석은 안 나가는 게 관례”라는 말만 되뇐다. 과거 민정수석이 국감에 나온 적이 여러차례 있으니 거짓말이다. 그리고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면 무조건 출석해야 하는 게 법이다. 출석하되 자기의 죄가 탄로날 우려가 있을 경우 답변을 거부해도 된다는 예외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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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헌법은 국회의 국정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국정감사를 재도입했고, 종전 헌법의 ‘국회는 진행중인 범죄수사·소추에 간섭할 수 없다’는 조항도 삭제했다. 수사중인 사건도 국정조사·감사를 피할 수 없게 함으로써 권력 비리에 대한 국회의 감시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국감 출석 거부는 반헌법적이기까지 하다.

백남기와 우병우. 법의 권능이 이렇게 사람을 가려 발휘된다면 그건 신분제에 버금가는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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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_최순실은? 국가권력이 인간을 달리 대우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있다. 최순실·정유라 모녀의 경우다. 정부기관, 민간기업, 대학…. 사방에 거칠 게 없다. 그들은 ‘법’도 개의치 않고, 귀찮게 ‘관례’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이 그저 마음대로 누리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 같다. 이런 부류는 특등 시민, 왕족이라고 해야 할까.

오래전 독재의 무리가 왕족처럼 군림하고, 법을 농락하는 충복들의 서슬이 퍼렇고, 권리와 존엄을 빼앗긴 이등 시민이 넘쳐나던 때가 있었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 비자금을 걷고 국민의 저항은 법과 공권력으로 찍어눌렀다. 마침내 수많은 시민·학생이 거리로 나서 민주화를 이뤄냈다. 헌법도 바꿨다. 1987년 여름의 일이다.

그 민주화의 계절 끝자락에 갔던 농촌활동이 떠오른다. 전남 나주, 벌판 한가운데 오래된 성당이 자리한 고즈넉한 마을이었다. 특히나 반긴 건 아이들이었다. 이미 농촌에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낯선 오빠·언니들을 예쁘게도 따르던, 두 볼이 사과처럼 발갛던 꼬마가 기억난다. 김매기 잠깐에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농사일을 체험하면서, 그 쇠락의 논밭에서 고통을 견디는 농민의 숙명을 어슴푸레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농민들과 자라나는 꼬마들에게 더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희망을 품었던 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전남 보성의 어느 농촌 마을에는 백도라지라는 네댓 살 꼬마도 살고 있었고, 동생인 백민주화란 아이도 그즈음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28년. 세월은 어디로 흘렀는지, 아이들의 아버지는 서울로 향했다.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