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삼
칼럼니스트·밀양 주민

7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고리 지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016년 자료를 기준으로 설비용량 세계 1위의 핵발전단지이다. 두 분의 어르신이 목숨을 끊었고, 단일 국책사업 최장 최대의 저항으로 불리는 ‘밀양 송전탑’은 바로 이곳 고리 핵발전단지의 전력을 실어나르는 설비다. 11년째 싸우고 있는 밀양 주민들의 나날은 지금 스산하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는 신경줄을 갉아먹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소음으로 밤잠을 설치는 일이 허다하다. 논, 밭, 주택을 내놓아도 살 사람이 없다. 인간관계의 모든 것이었던 마을공동체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갈라져 있다. 그런데 신고리 3, 4호기에다 5, 6호기까지 더 들어온단다. 주민들을 향한 ‘전기고문’은 도를 더해 간다.

지난 6월23일 57차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결국 신고리 5, 6호기 건설 승인안을 통과시켰다. 기습적이고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오후 6시가 넘어갈 무렵, 폐회 시점을 저울질할 줄 알았던 위원장은 “이미 대부분 ‘클리어’해졌고, 종일토록 회의를 해서 피로하다”고 운을 떼더니, 아무개 위원이 이를 받아 “더 이상 답이 없으니, 표결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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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해일에도 ‘어쨌든’ 안전할 거란다. 2기 이상의 핵발전단지에서 새로운 발전소를 건설할 때 이웃 발전소와의 연관과 파급 효과를 동시에 고려하는 ‘다수호기 안전성 문제’는 ‘아직 평가방법론이 개발되지 않았고, 현재 방식의 평가로는 확률적 가능성이 매우 낮으니, 일단 이대로 가자’는 논리로써 그냥 밀어붙였다. 표결이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되었을 때, 나와 함께 참관하던 밀양 사람 셋은 항의하다 끌려나오고 말았다.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380만명이 살고 있어도, 지난겨울 전기를 가장 많이 쓰던 시점에도 100만킬로와트급 핵발전소 15기 분량의 설비가 놀고 있었을 만큼 어마어마한 전기가 남아돌아도, 저들은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고 한다. 울산 시민 87%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2016년 1월 울산 사회조사연구소) 우리 국민들은 핵발전소를 축소할 경우 발생할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서도 64.9%가 감수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2014년 8월 )
그런데 왜 이럴까. ‘세상사 허망타’ 여겨질 정도로 어이없는 이유가 있다. 핵발전 이익동맹세력, 이른바 ‘핵마피아’들의 이해관계, 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 핵심으로 손꼽히는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조석씨는 지식경제부 차관 출신이다. 그가 재임 당시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의 신년 인사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념할 만한 발언이다.
“월성원전 1호기 수명 연장해야 할 것 아니겠냐. 우리 원자력계에서 일하는 방식이 있지 않으냐. 허가 나는 걸 기정사실화하고, 돈부터 집어넣지 않느냐. 한 7천억 들어갔는데, 그래 놓고 허가 안 내주면 7천억 날리니까 큰일 난다. 금년 연말에 안 내주면 실제로 큰일 난다. 관계되는 분들 중에서 연말에 집에 가서 아기 봐야 하는 분들 계실 것이다.”
다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합리적 이유가 1도 없는, 380만명이 사는 곳으로 10기의 핵발전소를 때려넣는 유사 이래 인류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시도를, 밀양 어르신들에게는 신고리 3호기 4호기 5호기 6호기 서서히 전압이 높아지는 ‘전기고문’이나 다름없는 이 시도를 우리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인가?
원안위 회의장에서 끌려나와 입구에 내동댕이쳐졌을 때 이상하게 기분이 차분해졌다. 바로 그 전까지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여기가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바닥’이라는 느낌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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