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원에게 퇴사를 종용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만삭인 부인은 “아기 태동이 약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출산휴가를 냈다. 남편은 혼자서 퇴사 압박을 견뎌내야만 했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부인은 본래 일반관리직이었으나 ‘정육 파트’ 업무로 발령을 받았다.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몸으로 무거운 고깃덩이를 들고 날카로운 정육 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하다 보면 눈물이 나왔다. 그래도 고객서비스 만족도 평가에서 두 번이나 만점을 받았다.
몇 달 뒤 다시 금융 업무로 발령을 받았지만 ‘대기발령’이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임원실 앞 빈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있어야 했다. 남편은 결국 아내의 퇴사를 회사에 알렸고 부인의 사직서는 회사가 작성해 도장까지 대신 찍었다. 고민 끝에 부부는 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지만 앞으로 두 사람 앞에 펼쳐질 일들은 지금까지 겪은 일 못지않게 험난할지도 모른다.
1997년 뒤 외환위기를 겪을 무렵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한 보험회사에서는 88쌍의 사내 부부 중 86쌍의 한쪽 배우자를 퇴직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퇴직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해고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의 판결은 오락가락했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라고 판결했지만 부부 중 아내에게 퇴직 요구가 집중된 것이 문제라기보다 ‘비진의(진의 아닌) 의사표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경남 창원의 한 회사에서는 이른바 ‘면벽 대기발령’이 논란이 됐다. 회사는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의 자리를 사무실 한쪽 사물함들만 바라볼 수 있는 위치로 배치했다. 별다른 업무도 주지 않은 채 며칠 뒤 원탁으로 이동시켰다. 아침에 출근해 온종일 벽만 보고 앉아 있어야 했다. ‘10분 이상 자리이탈 시 팀장에게 보고’, ‘개인전화 금지’, ‘스마트폰을 통한 게임이나 카톡, 인터넷 등 사용 금지’, ‘개인 서적 탐독 금지’, ‘어학공부 금지’ 등의 ‘행동수칙’이 주어졌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대기발령 구제신청’을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부당한 대기발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노위는 “대기발령은 인사명령으로 규정되어 있고 징계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별도로 규정되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위법하거나 인사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이유가 궁색하다. 근로기준법 제23조 ‘해고 등의 제한’에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의 대기발령은 바로 부당한 ‘전직’ 또는 ‘그 밖의 징벌’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 대기발령이란 글자 그대로 회사가 통상 인사발령을 하면서 잠시 대기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이처럼 당사자에게 현저한 불이익을 주는 대기발령은 당연히 ‘징계’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사건에 대해 판단할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노동법을 올바르게 해석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노동법은 대표적인 사회법이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시민법과 달리 사회법은 “불평등하게 적용함으로써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 그 원리다. 줄 타는 광대의 부채는 언제나 광대의 몸이 기울어지는 반대편으로만 펼쳐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평등하게’ 부채를 가운데로만 펼쳤다가는 줄에서 바로 떨어지고 만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노동법은 사법시험에 출제되지 않고 법과대학이나 사법연수원에서도 선택과목이었고 법조인으로 성공하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공부하는 사람들이 극히 적었다. 그러니 사회법 사건인 노동문제를 시민법의 형식적 평등에 입각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기발령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는 사용자와 대기발령 명령을 받아야 하는 노동자 사이에서 형식적으로 평등한 입장을 갖는 것이 ‘공정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부채를 어느 쪽으로 펼쳐야 할 것인가?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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