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헝그리 정신이 해법이라는 ‘꼰대 경제학’ / 정남구
기자정남구
- 수정 2024-08-05 01:12
- 등록 2015-12-17 18:55
조울증일까, 다중인격장애일까?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우리 경제가 비상상황에 놓여 있다며 국회의장한테 노동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라고 압박한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우리 경제가 3%대인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성장해 정상궤도로 복귀한다고 했다. 하도 상반되는 얘기라 머리가 돌 지경이다. 한국 경제에 위기의 그림자가 짙은 건 분명하다. 물론 성장률이 지난해의 3.3%에서 올해 2.7%로 떨어졌다고 위기인 건 아니다. 내년에 3%대 성장률을 회복한다고 위기를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성장의 질이 나쁘고 병증이 깊어지는 게 문제다. 오랫동안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은 뒷걸음질을 하고, 한계기업이 급증했다. 성장의 다른 한 축인 민간소비는 몇 해째 지지부진하다. 올해 성장을 이끈 건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다.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정부는 46조8천억원(잠정치)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내가며 지출을 엄청나게 늘렸다. 가계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100조원 넘게 빚을 늘렸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외환위기가 몸을 잘못 관리해 얻은 급성병이었다면, 지금은 노년의 아픈 몸에 여러 합병증이 퍼지는 꼴이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체 수출 대기업을 적극 지원하면서 성장해왔다.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쓴 이 성장전략은 지금까지 큰 줄기를 바꾸지 않았다. 큰 탈이 났던 게 외환위기였는데, 그때도 같은 전략으로 위기를 넘었다. 부실 대기업들을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독점구조를 정비하고, 노동자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을 깎았다. 원화 값이 낮아 가계가 물가 부담을 지는 사이 수출 기업들은 체력을 회복했다. 우리 수출 시장이 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중국 시장의 성장은 그 뒤 한국 수출 대기업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물론 그러는 사이 좋은 일자리가 계속 줄어 중산층이 붕괴하고 빈곤은 증가했다. 지금 위기는 세계경제가 긴 조정기에 들어간데다, 우리 수출 대기업들이 경쟁력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가 기업 간 경쟁을 막아 보호하고, 공격적인 자유무역협정과 세제를 동원해 지원하고, 임금까지 억제하는 동안 눈앞의 과실을 따 먹고 안주한 것이 문제의 뿌리다. 제품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올라가지 않는다. 낡은 성장전략에서 대전환을 못 하면 이대로 쓰러진다.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자원 배분을 왜곡하는 재벌 지배구조와 금융시스템을 손보고, 창조적 파괴가 살아나게 경쟁질서를 고쳐야 한다. 노동시간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고, 교육과 연구개발(R&D)도 미래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 한편으로 그동안 수출 대기업에 주던 세제혜택과 보조금 지원을 가계의 소득 증대와 사회안전망 확충에 써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임금이 비싸 경쟁력을 잃고 있다. 임금을 깎자.” 그게 바로 노동법 개정이다. 사람들이 눈이 높아 실업자가 많으니 ‘헝그리 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19일 청와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외일자리 포털을 열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말할 수 있게)….” 석유 값이 떨어져 중동 산유국들은 지금 야단났다. 사우디아라비아조차 사상 처음 외국에서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리는 형편이다. 철 지난 ‘꼰대 경제학’의 엉터리 처방에 나라 경제의 병이 깊어간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