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정학적 특성상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외관계에서 줄곧 선택을 강요받았다. 당나라 중엽에 당의 ‘천조예치체계’(天朝禮治體系)에 편입되면서부터 한국은 중국의 왕조 교체기마다 뜨는 왕조와 저무는 왕조 사이에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았다. 원·명 교체기에 고려는 친원과 친명으로 갈라졌다. 그 결과 고려 왕조의 요동정벌과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변이 일어났다.
명·청 교체기에도 다시 갈림길에 섰다. 그 갈림길에서 중립을 선택했던 광해군은 인조 반정으로 쫓겨난다. 그렇지만 인조의 친명배청(親明排淸)이라는 선택은 정묘, 병자호란을 불러온다. 결과 한반도는 뜨는 왕조 체계에 다시 편입된다.
근대사에서 한국은 세계 체제에 편입되면서 열강을 상대로 한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주적과 협력국이란 패턴과 ‘이이제이’의 패턴이 생겨난 배경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주적’이 되면 ‘친중(親中), 결일(結日), 연미(聯美)’라는 선택이 나오고 일본이 ‘주적’이 되면 ‘인아거일’(引俄拒日)과 같은 책략이 나왔다. 그렇지만 어느 협력국도 한국의 지정학적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한반도는 미·소에 의해 둘로 나뉘어 서로를 ‘주적’으로 하고 미국과 소련을 각각 ‘협력국’으로 하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 결과가 한국전쟁이요, 냉전이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강요받은 선택은 ‘양자택일’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선택의 상대가 제로섬 관계였기 때문이다. 냉전시기 한국이 선택한 한-미 동맹 역시 양자택일의 선택이었다. 한국은 북한뿐만 아니라 소련, 중국과도 적대관계에 있었다. 그것은 피아가 분명한 제로섬 시대의 간단명료한 선택이었다.
냉전의 종식은 한국에 새로운 선택의 공간을 열어놨다. 질서 교체기 때마다 찾아오는 선택이라 하겠다. 한국은 한-미 동맹이 겨냥했던 적대국 중·러와 관계개선을 했다. 그로써 ‘북방삼각’이 해체된다. 한반도는 ‘남방삼각’ 대 북한이라는 구도로 냉전을 지속한다. 한-미 동맹의 내실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역학관계가 변화하면서 한국은 다시 새로운 선택에 직면했다. 중-미 사이의 선택이다.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은 ‘아시아 회귀’를 선언하고 중국 견제의 길에 나섰다. 축은 미-일 동맹이다. 미국은 한-미 동맹도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한-중 관계는 사상 유례없이 발전해 왔다. 한-미 동맹이 냉전시기로 되돌아가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미-중 사이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한-미 동맹에서 한국의 전략적 지향점이 미국과 다르게 변했기 때문 아닐까.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한-미 동맹의 역할을 냉전 시기의 그것으로 이해한다면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때 오바마 대통령은 남중국해 문제에 한국이 협조해주기를 바랐다. 한국에 선택의 딜레마를 던진 것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 참가 문제로 상당한 고민을 했다. 결국 어디까지가 동맹이냐라는 데서 오는 딜레마가 아닐까.
실제 박 대통령은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정책의 핵심 파트너”라고 했다. 중국 언론은 이 ‘핵심 파트너’를 ‘핵심적 지주’로 번역했다. 중국인들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일종의 외교적 수사로 받아들였지, 미국의 중국 견제전략에 동참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시각에서 볼 때, 한반도 분단이 파생시키는 문제들이 결과적으로 미국의 아·태 회귀 전략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되돌아보면 역사상 한국의 선택은 제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강요받은 선택이 많았다. 지금은 다르다. 시대가 달라졌다. 한국의 위상도 달라졌다. 누가 뭐라 해도 오늘날 한국은 역사상 가장 좋은 ‘천시’와 ‘지리’ 속에 제 스스로 자기 운명을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다. 역사적인 관성으로 스스로 제 운명을 남한테 맡기는 자기 강요의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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