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신궁(神弓)의 나라였다. 활을 잘 사용해 예로부터 동이족으로 불렸다. ‘이’(夷) 자는 ‘큰 대(大)’와 ‘활 궁(弓)’을 합쳤다. ‘동쪽의 큰 활잡이’였던 것이다. 총이 발명되기 전까지 활은 ‘최종병기’였다. 바람을 가르고 달려와 표적을 명중시키는 이 놀라운 무기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弓矢匠)인 박호준(71)은 화살을 만든다. 그와 같은 전통공예 장인에게 어울리는 말이 ‘천공’(天工)이다. ‘하늘의 조화로 자연히 이루어진 묘한 재주’라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쓸 때는 ‘백성을 다스리는 하늘의 조화’를 뜻하기도 한다.
옛날부터 기물을 만드는 사람을 천공이라 부르고, 그들을 신성시했다. 동양의 공인들은 수준 높은 철학적 이론을 근거로 하여 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문을 숭상하고 기술을 천시했다. 공인은 천인으로 전락했고, 사상적 작품창작까지 쇠퇴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분위기가 오히려 공예인들의 창작욕구에 불을 질러 그들 나름대로 철저한 장인정신을 품게 했다.
박호준과 같은 천공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이 14일부터 다음달 25일까지 ‘천공을 만나다’라는 행사의 멍석을 깔았다. 중요무형문화재 합동공개행사로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공예 분야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솜씨와 기량을 일반인에게 선보인다.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 전통기법을 오롯이 지켜온 장인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모두 23명의 기능보유자가 참여해 제작 과정을 시연해 보이고 전통기법으로 만든 작품을 전시한다. 이번에 만날 중요무형문화재는 제47호 궁시장을 비롯해 제4호 갓일, 제14호 한산모시짜기, 제28호 나주의 샛골나이, 제66호 망건장, 제67호 탕건장, 제93호 전통장, 제105호 사기장, 제110호 윤도장, 제119호 금박장 등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유레카] 하늘이 내린 재주, 천공 / 손준현
기자손준현
- 수정 2015-08-12 18:40
- 등록 2015-08-12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