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5월1일 미국의 정찰기 U-2가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소련군의 S-75 미사일에 격추됐다.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이던 조종사 게리 파워스는 소련에 2년간 억류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무인기(드론)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무인기는 베트남전쟁 때 정찰기로 처음 실전배치됐다. 554대가 작전 도중 손실됐다. 그만큼 미군 조종사가 덜 죽었다. 더구나 비용이 유인기의 10%대다. 미국이 무인기 개발·활용에 열성인 이유다. 2001년 9·11 이후 부시 행정부는 무인기 프레더터에 헬파이어 공대지 미사일을 실어 오사마 빈 라덴 수색·사살 작전에 투입했다. 무인폭격기의 출현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술 더 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며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라크·예멘·소말리아·리비아 등에 무인기로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선전포고 없는 전쟁 행위, 국제법 위반이다. 오바마는 무인기 폭격으로 알카에다 지도부의 일원인 안와르 아울라끼 등이 숨지자 “알카에다에 치명적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스마트하다’는 무인기 폭격의 민간인 살상률은 낮춰잡아도 30%대를 웃돈다.

이 와중에 저 핏빛 무인기가 온라인 쇼핑의 일상화에 힘입어 택배 혁신의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2013년 12월1일 ‘반경 10마일(16㎞) 안에 2.27㎏ 이하 상품을 30분 안에 배달’하는 무인기 택배를 시연했다. 아마존뿐만 아니라 구글·디에이치엘(DHL)·알리바바·도미노피자 등도 무인기 택배를 시험운용하고 있다. 속도(당일 배송)와 비용 절감, 오지 배송 등이 가능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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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무인기 택배가 가능할까? 지난해 말 기준 당국에 등록된 민간 무인기는 369대다. 탐사용 3대를 뺀 상업용은 농약살포(147대)와 촬영(219대)용뿐이다. 민간 무인기는 무게 150㎏ 이하여야 하며, ‘무게가 12㎏ 이상이거나 고도 152m 이상 비행하려면’ 예외 없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분단에 따른 이런 안보 차원의 규제가 아니라도 무인기 택배 상용화가 요원하리라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택배노동자가 무인기보다 싸고 빠르다’. 택배노동자가 화물 1건당 받는 돈은 700원. 이런 700원들을 모아 회사 로고가 새겨진 탑차 할부금과 보험료를 내고, 기름을 넣고, 점심을 먹고, 스마트폰 할부금과 통신비를 낸다. 무인기가 배달 중 사고를 내면 당연히 택배 회사가 수습 비용을 대겠지만, 한국에선 법적으로 ‘개인 사업자’인 택배노동자가 떠맡아야 한다. 무인기는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의 택배노동자를 당할 길이 없다.

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1978년 앙드레 고르가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쓴 ‘실업의 황금시대’라는 글을 떠올린다. 자동화로 ‘훨씬 더 적은 노동으로 모든 필요를 더 잘 충족’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노동자를 ‘여가의 사회’가 아닌 ‘실업의 사회’로 이끌 위험이 크다고 고르는 이미 37년 전에 경고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생산의 문제는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분배의 문제만 있다는 점을 의식하게 된다면, 현재의 사회 시스템은 유지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지배집단은 인민한테 더는 오늘날처럼 많이 노동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말하는 대신 ‘노동이 필요없게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차츰 많은 여가시간을 갖게 되리라고 말하는 대신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가 다른 경제적 합리성을 위해 연대하는 대신, 아주 희소한 일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게 하려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비정규노동자다.”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