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을 지내고도 존경받는 이는 아마 이명재 변호사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취임 때 달랑 가방 하나 들고 총장실에 들어갔다가 퇴임 때 그 가방만 달랑 들고 나왔다고 한다. 총장 방 책장엔 책 한 권 꽂혀 있지 않았다. 법전 한 권만 책상 위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대신 그의 저고리 왼쪽 주머니에는 임기 내내 사표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에게선 허무와 고독의 냄새가 느껴지곤 했다. “대학 땐 걸핏하면 빈속에 술을 마시고는 돌 벤치에 누워 잠이 들곤 했는데, 어느 날은 입이 돌아가기도 했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쓸쓸함마저 밀려왔다. 돈과 권력을 움켜쥐었던 인사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가까이 지켜보면서 세상의 욕망이 한낱 거품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탓일 게다.
김진태 검찰총장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둘이 같은 학교를 나와, 국책 은행에 다녔고, 당대 최고의 검사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다. 비움의 경지를 추구하는 자세가 닮았다는 거다.
김진태는 사람과의 관계를 탐하지 않는다. 대구지검장 시절 “지역 실력자들과 친분을 쌓아둬라”는 충고가 많았는데도, 선승이 수도하듯이 관사에서 책만 읽었다. 서울에 돌아올 즈음엔 <사기> <십팔사략> 등을 섭렵한 결과 중국 역사에 통달해 있었다. 술은 가끔 하나 대작하는 사람의 절반은 스님들일 것이다. 비싼 술은 피한다. 청양고추를 곱게 갈아 소주에 타 마시는 걸 즐긴다.
한번은 자신의 고향 자랑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임금이 볼 때 낙동강을 기준으로 왼쪽을 경상좌도, 오른쪽을 경상우도라고 한다. 좌도는 퇴계 이황이, 우도는 남명 조식이 대표적인 유학자다. 좌도 유생들은 끊임없이 왕이 불러주기를 기다린 반면, 우도의 유림은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했다. 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선 건 퇴계가 아니라 남명의 후예들이었다.” 경상좌도 출신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 한켠을 엿본 것 같았다. 대학 학술지 <피데스> 편집장 시절부터 40년 가까이 리영희 선생과 교분을 쌓은 거나, 명진 스님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도 비슷한 마음가짐에서 유래하는 것일 게다.
그런 김진태가 요즘 수심에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채동욱 뒷조사 문제로는 청와대와, 간첩 증거조작 사건으로는 국정원과 결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역사상 이렇게 ‘센 놈’ 둘을 동시에 맞닥뜨린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일선 검사들의 공기는 흉흉하다. 서울중앙지검의 몇몇 간부들이 총장 몰래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총장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젊은 검사들 사이에서는 “총장이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불만이 튀어나온다.
어려운 때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옛날 검객의 고수들은 비움(空)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진검승부를 펼치는 긴장 속에서도 발에 밟히는 땅의 감촉을 느끼려 했고, 먼 산의 바람소리를 들으려 했다. 밀려드는 번뇌와 집착, 욕망을 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이명재는 어느 인터뷰에서 김진태를 가리켜 “고집불통이라고 하는데 이유 없는 고집을 부리는 걸 보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곤 “검찰의 제단에 몸 바칠 각오를 하라”고 주문했다. 지금이야말로 고집을 부려야 할 이유가 지천이다. 무소의 뿔처럼 밀고 나가야 할 때다. 그리하여 그가 좋아하는 이용악의 시 ‘전라도 가시내’의 한 토막처럼 노래도 없이, 자욱도 없이 사라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게 툴툴 털고 일어나 이명재와 서로 권커니 자커니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술은 청양고추를 갈아 넣은 소주가 제격일 것이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