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과 종교기관들은 재물이나 권력이 아니라 가치에 관해 말하고 실천한다. 오랜 기간 동안 종교인들은 자발적 기부자들이었고, 종교기관들은 선구적인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자였다.

그런데 경제활동은 늘 그런 가치에서 예외였다. 큰 기금을 가진 재단들은 안전하면서도 수익을 높게 보장해주는 금융상품을 찾는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주말에 종교기관에 많은 기부를 하는 신도들이 주중에는 냉혹한 경영자로 살아가는 일도 쉽게 묵인됐다.

그런데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사회적 자본시장 콘퍼런스’에서, 그런 전통이 깨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콘퍼런스는 사회적 기업 등 가치를 담은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적 투자’를 주제로 삼아, 보통 사회적 기업가, 사회운동가, 자선사업가 같은 이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올해는 랍비·목사·수녀·승려 등 성직자들이 눈에 띄었다. 주최 쪽은 보고서에서 드러내놓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올해 그동안 드러내놓고 이야기되지 않던 ‘믿음’(faith)과 ‘투자’의 관계를 한 주제로 잡았다”고 명시했다. 각자가 믿는 가치와 소속된 조직의 경제활동이 같은 방향을 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그 방법을 토론하는 세션이 연이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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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만이 믿음은 아니다. 사람은 어떻게 길러져야 한다는 교육적 믿음도 있다. 인간과 지구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에 대한 생태적 믿음도 있다. 인간의 권리는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한 인권적 믿음도 있다. 정치적 신념, 사회적 신념을 포함하면 영역은 무한하다. 이런 믿음이 주는 가치와 우리의 일상적 경제활동은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며, 이에 맞춰 실천해야 한다는 게 이 콘퍼런스에 모인 이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답이 바로 사회적 투자였다. 개인이 100만원을 투자하든 재단이 100억원을 투자하든, 그 투자 대상은 그 개인이나 재단이 가진 믿음에 가까운 실천을 하고 있는 기업이라야 한다는 게 사회적 투자의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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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영리 동기와 이기심을 북돋우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은 초기에는 맨주먹으로 창업해 작게 운영하지만, 기술력이 입증되고 나면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으면서 빠르게 확장해 나간다. 기업공개까지 가서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면 사업은 전국, 전세계로 순식간에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자본주의가 영리기업에 힘을 주는 ‘투자’라는 행위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들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한 지역에서 성공했더라도 그게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늘 자금부족에 시달리며 미래를 위한 투자는 생각하기 어렵다. 일시적 기부금이나 지원금에 의존하는 재원구조 탓이다. 사명에 투자하는 사회적 투자는 이런 막힌 곳을 뚫어주며 자본주의를 개조하는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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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투자를 하다 보면 금세 돈을 잃어버리지 않겠느냐는 걱정에 대해, 코디스재단 설립자인 론 코디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재단 기금의 20%를 사회적 투자로 돌린 뒤 한달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그런데 1년 뒤 계산해보니 그 20%가 나머지 80%보다 훨씬 안전했다.” 지금처럼 자본주의가 불안정한 국면에서는 사회적 투자가 재무적으로도 더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회적 투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뒤 휘청거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과도 맞물려 있다. 자본이 자본주의의 변화를 이끌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자본이 변화하지 않고서 자본주의가 변화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신념과 경제가 만나는 영역인 사회적 투자는 그 변화 가능성을 탐색하는 중요한 실험이다.

이원재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