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부끄러운 조직적 골방 악플질, 즉 불법적 비밀 국내 여론 공작에 대한 촛불시위가 한창이다. 물론, 수만명이 지속적으로 광장에 시위를 나올 수준으로 관심을 모아낸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시위가 그렇듯 관건은 시위 자체가 아니라 시위에서 주장하는 바가 어떤 식으로든 위정자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조처를 취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시위가 계속되었다가는 자기 정치 세력이 심각한 타격을 얻을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회에 나온 이들의 여론이 딱 여기 나온 이들만의 여론이 아니라, 전체 시민 여론을 대표하는 표집으로 보여야 한다. 즉 시위에 나온 이들을 통해 선명하게 표출되기는 하지만, 그곳에 나오지 않는 이들이라도 일상의 화제로 늘 올리고, 남녀노소 이 사안을 깊숙한 수준에서든 막연한 수준에서든 걱정하도록 만드는 것 말이다. 그것이 바로 대중적 소구력이다.

국정원의 불법적 비밀 국내 여론 공작 사안은, 큰 틀에서 볼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한 문제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벌여온 그 작업은, 정권의 통제와 독립된 시민 여론의 형성을 방해하여 결국 민주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다. 비록 공작의 내용은 인터넷 하위문화 커뮤니티에서 그들의 대화 수준을 그대로 모사하여 참여한다는 한심한 수준이지만, 조직적 참여 과정, 들킨 이후 수사에 대한 방해 과정 등은 충분히 심각하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설명은, 대중 다수를 움직이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결국 사람들의 공감과 관심을 적정한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부분은 훨씬 구체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첫째, 국정원이 해온 일들을 구체적 불쾌감 또는 위협으로 연결시켜줘야 한다. 민주제에 대한 일반적 이해와 사회적 합의가 매우 낮아 보이는 현실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말만으로는 당연히 공감을 사기 힘들다. ‘막걸리 보안법’ 정국을 상기시켜봤자, 이제 와서는 기억이 흐릿하거나 아예 부재하다. 정권한테 몰래 속여도 되는 호구 취급을 당하는 불쾌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호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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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정치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이 수십년 전 이미 주장했듯, 나만 ‘탈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소리’로 고쳐내는 것이 필요한 이슈임을 설명해내야 한다. “그냥 당신이 수상한 글을 쓰지 않으면 된다, 당신이 악성 정치 댓글 넘치는 사이트를 피하고 그런 내용을 읽지 않으면 된다”라는 식의 반론이 통하지 않는 논리가 필요한 것이다.

셋째, 그러면서도 단순화가 과도할 때 흔히 동반되는 헛소문을 경계해야 한다. 수년 전 광우병 정국에서 나왔던, 과학적 근거를 훌쩍 뛰어넘은 ‘뇌송송 구멍탁’ 부류의 괴담들을 기억하자. 당장의 여론 확산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사실관계조차 무시하는 비이성적 집단 심리로 두고두고 비난받으며 반대급부로 여론이 사그라질 빌미를 활짝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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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건들을 충족하여 국정원 국내 여론 비밀공작을 적극적으로 거론하는 과제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선동이 아니라 정당성을 가진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란 이토록 골치 아픈 작업이다. 시위 구호든, 소셜망과 개인 매체에 남기는 단상이든, 무엇보다 언론 보도든, 이슈 대중화에 힘을 쓸 때 좀더 치열한 고민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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