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유산균 음료 광고로 유명해진 박테리아다. 광고에 등장했던 배리 마셜은 헬리코박터를 발견한 공로로 2005년 노벨상을 받았다. 다들 헬리코박터 치료제 개발에 몰두할 때,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진화인류학자들은 사람들의 장에서 헬리코박터를 채취했다. 인간과 공존해온 헬리코박터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인류의 기원과 이동 경로를 추적하려 한 것이다. 인류의 기원은 다시 아프리카로 밝혀졌고, 이 논문은 2003년 <사이언스>에 실렸다.

지난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는 원숭이도 이기적인 사람이 주는 음식을 거부한다는 영국 스털링대학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지난해 일리노이대학의 연구진은 정찰 임무를 맡는 꿀벌과 벌집 안에서 지내는 꿀벌의 행동 차이를 신경전달물질 수준에서 규명하고 이를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지난 10여년간 막스플랑크의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꾸준히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보고하고 있다. 이들 모두 유럽과 미국의 연구진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으로 가보자. 1954년 교토대학의 모리 교수는 초파리를 암실로 가져갔다. 암실에서 유지된 초파리가 어떻게 진화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암실 속에서 초파리를 유지시켰고, 후배 과학자들에게 연구를 계속해 달라고 유언했다. 이 초파리는 ‘암흑 초파리’라고 불리며 57년, 1400세대가 넘게 유지되고 있다. 교토대학의 실험실에선 반세기 넘게 진화실험이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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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이 짧아 보일 수도 있다. 몇주 전 <네이처>는 짧게는 80년, 길게는 400년간 진행되고 있는 느린 과학연구들을 소개했다. 벨기에 연구자들에 의해 40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태양 흑점 개수 세기, 이탈리아 베수비오연구소에서 17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거대화산의 움직임 관측,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한 물리학자로부터 85년간 관찰중인 타르 찌꺼기 연구,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연구들이 불가능하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웃기지만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연구진이 노화유전자를 제거한 생쥐를 힘들여 만들고는 폐기처분했다는 것이다. 생쥐의 수명엔 변화가 없고 정력만 세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이 흥미로운 현상을 연구할 수 없었다. 정부 연구비는 수명 연구에만 쓰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비아그라 연구가 날아가 버렸다. 이런 시스템에서 과학자들은 창의적일 수 없다.

창조과학회가 교과서에서 시조새를 삭제하자는 청원을 했다. 하지만 한국엔 이들의 주장을 반박할 진화생물학자가 몇 명 되지 않는다. 진화생물학이 돈 안 되는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생각해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초대 소장 플렉스너는 1939년 ‘쓸모없는 지식의 효용’이라는 글에서 “돈 낭비처럼 보일지라도, 무해한 괴짜들을 약간은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 괴짜들 중에 아인슈타인, 앨런 튜링, 다윈처럼 인류 정신의 진보에 기여한 인물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2010년 그래핀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가임 교수는 2000년 괴짜 노벨상으로 알려진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개구리를 공중부양시켜 반자성 부상 이론을 증명한 공로 때문이다. 논문 공저자는 그의 햄스터였다. 이그노벨상을 무시할 수 없다. 노벨상은 이그노벨상 수상이 가능한 문화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그노벨상이라는 기초 위에 노벨상이라는 영광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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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성장의 여파로 한국 사회의 기초는 부실하다. 새로운 정치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 기초 위에서 탄생할 괴짜들 중엔 한국이 부러워하는 스티브 잡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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