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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메리토크라시 / 김동춘

등록 :2012-03-26 19:17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학력·학벌에 집약된 ‘실력주의’가
온 사회에 여과없이 받아들여지는
지독한 메리토크라시 사회, 한국
민주통합당은 전태일의 동생인 전순옥씨를 비롯한 5명 안팎의 노동계 인사를 비례대표 당선 가능권에 올렸다. 친노동 경제민주화의 의지를 담았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노동자의 커진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일까?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빈민운동가 출신을 비례대표 1번으로 올린 적이 있다. 그것이 새누리당의 빈민친화성을 보여준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을까?

민주당은 이번에 36명의 법조인을 공천했는데 공천자 215명의 17%에 달한다. 새누리당의 29명을 합하면 두 당이 공천한 법조인이 모두 당선될 경우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0.034%에 불과한 법조인이 국회의 5분의 1을 차지하여 무려 588배나 과잉대표된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자는 어떤가? 거대 여야의 비례대표나 지역구 후보로 공천된 노동운동 출신을 다 합해도 10명이 안 되고, 그들의 이력을 보면 실제로는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 다수다. 노동자가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 정도 된다고 보면 이들은 양당에서 10분의 1 이하로 과소대표되는 셈이다. 18대 국회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결국 학벌이 없는 노동운동가 출신 의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야당으로서는 지역에 노동자를 공천하고 싶어도 적합한 인물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지역정치의 경륜과 사회운동의 이력을 가진 노동자 후보를 거의 찾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더욱이 현장 노동자들 자신이 동료 노동자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화 25년은 곧 민주노조운동 25년이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10석이나 얻은 적이 있고, 통합진보당·진보신당이 지금 활동하고 있지만, 그 대표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 나온 엘리트들이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자가 진보정당의 지도자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렇게 보면 한국 정치는 ‘노동자 대표’임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학벌 엘리트들의 합작에 의한 지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나 진보나 이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노동자들을 권력권에서 완전히 배제해 놓고, 그들이 스스로 힘을 기를 수 있는 조건도 만들지 않고 진보니 개혁이니 외치고 있는 꼴이다. 사실 노동자들 자신도 사법부의 극히 편향적인 판결이나 퇴직 후 한 해 동안 수십억원을 번 변호사들의 수입에 시비를 걸지 않은 채 자기 자식도 판검사·변호사 만들고 싶어 한다. 똑똑한 사람들이고 그 자리에 갈 능력이 있었으니, 그렇게 해도 좋고 그 정도의 대우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렇게 보면 한국은 정말 학력·학벌에 집약된 ‘실력주의’가 온 사회에 여과없이 받아들여지는 지독한 메리토크라시 사회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민주화 이후, 아니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 이후 하나도 안 변했다. 재벌의 지배보다 더 무서운 것이 메리토크라시다. 그 실력·학력·학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평생 쉼 없이 일해도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과연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사는가? 메리토크라시는 온 사회를 경쟁과 스트레스로 몰아넣는 우리 사회의 중병이다. 학벌 좋은 사람이 대표로 있는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사회가 아닌, 노동자들이 사교육에 목매달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우리 사회의 과잉교육열과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의 상당부분은 노동천시·실력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진보신당이 탈학벌을 선포하면서 공천 후보자들의 학력을 일체 올리지 않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정부와 기업이 고졸자를 더 많이 채용하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 그게 바로 이 시대 진보의 길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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