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영화제 트로피가 오스카로 불리게 된 사연은 명확하지 않다. 가장 유력한 설은 아카데미협회 영화자료실 사서였던 마거릿 헤릭이 이 트로피를 보고 자신의 삼촌 오스카와 닮았다고 말했고, 그 뒤 아카데미 직원들이 따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1936년부터 아카데미협회에서 일한 헤릭은 45년부터 71년 은퇴할 때까지 최장수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협회는 그를 기려 영화자료실을 ‘마거릿 헤릭 도서관’이라 이름붙였다. 또다른 설은 여섯번째 영화제가 열린 1934년 할리우드 칼럼니스트인 시드니 스콜스키가 칼럼에서 오스카란 이름을 처음 썼다는 것이다. 아카데미협회는 1939년까지 공식적으로 이 애칭을 쓰지 않았다. 긴 칼을 두 손으로 모아 쥐고 필름통 위에 서 있는 기사 모습의 오스카를 디자인한 것은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엠지엠) 영화사 미술감독이자 아카데미협회 발기인이었던 세드릭 기번스였다. 처음엔 금도금한 청동이었는데, 곧 땜납 합금 비슷한 브리타니아(주석·안티몬·동의 합금)로 바뀌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금속이 모자라 몇 년 동안 석고로 만들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 금도금한 트로피로 바꿔줬다. 2000년에는 트로피를 운반하다가 하역장에서 도둑을 맞기도 했다. 오스카 트로피의 개당 제작비는 350달러지만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후보자 명단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영화 관계자들에게는 큰 영광이다. 최근 열린 아카데미영화제 시상 결과를 국내 언론들도 크게 보도했다. 왜 미국 영화상은 크게 보도하면서 국내 영화상 기사는 쓰지 않는지 의아해할 독자가 있을 것이다. 이유는 보도할 만한 권위 있는 영화상이 없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시상으로 신뢰를 잃었거나, 특정 언론사의 집안 잔치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은 영화상 하나에서도 드러난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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