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들아! 그대가 약속한 대로 나를 고향으로 데려가 다오.”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에서 렘노스 섬에 갇힌 주인공은 트로이로 함께 가 참전하자는 전우들의 강한 권유에 대해, 그런 말은 다시 말라며 한사코 거부한다. 어쩔 수 없이 그의 고향 말리스로 향하려던 순간, 이제 신이 된 헤라클레스가 갑자기 나타나 “나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떠나지 말라”고 말한다. 필록테테스에게 활과 화살을 물려준 은인 헤라클레스는 필록테테스를 트로이 전쟁의 영웅으로 만들려는 ‘제우스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설득한다. 필록테테스는 언제 그렇게 고집을 피웠느냐는 듯, “나는 당신의 말에 불복종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로이로 향한다. 억지스러운 이런 결말은 전설과 역사에 맞추려 한 때문이다. 필록테테스는 트로이 전쟁의 후반부 영웅이다. 갈등을 고조시켜온 극의 전개대로라면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맞지만, 그럴 순 없으니 신의 뜻을 핑계로 결말을 되돌린 것이다.

벌여놓은 일이 수습이 안 될 때, 고대 그리스에선 종종 기계장치를 이용해 신으로 분장한 배우를 무대 위로 내려보내 그로 하여금 주인공을 구하게 했다. 이렇게 위기의 해결을 신에게 맡기는 것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고 한다. ‘기계장치로 온 신’이라는 뜻이다. 서부영화에서 결정적 순간에 기병대가 나타나는 것이라든지, 위기로 치닫던 드라마가 갑자기 벌어진 우연한 일로 해결되는 일 따위가 그런 예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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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지금으로선 정부 구상대로 세종시 성격을 바꾸기도 어렵고, 그대로 가기도 난망해 보인다. 해결되기 어려운 갈등을 빚어낸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신’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런 신이 통하기나 할까? 설령 그런 구상이 있다 해도 그건 이미 ‘나쁜 연극’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