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에게서 등산길에서 만난 한 노신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른바 좋은 직장의 고위직에서 은퇴한 그분은 상당한 재산도, 괜찮은 아내도, 잘 키운 아들딸도 있는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동행하게 된 친구와 걷는 동안 그분이 한 이야기는 전부 절절한 외로움의 호소였답니다.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지만 아들딸은 물론 아내하고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하고요. 항간에서 유행하는 ‘삼식이’ 이야기처럼 아내는 그가 온종일 나가 있다가 저녁까지 먹고 9시쯤 귀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함께 저녁을 먹으며 정담을 나눌 친구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답니다. 은퇴한 옛 친구들과는 진솔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던 까닭에 만나도 여전히 공허한 이야기뿐이고, 그러니 자연스레 친구들도 만나기 싫어져 이렇게 혼자 산길을 걷는다고 했답니다.

문제는 이것이 그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이 땅의 많은 남성들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것입니다. 50대 중반인 남편은 요즘, 저녁 모임을 가면 은퇴한 남성들의 처지를 희화화하는 이야기들을 부쩍 많이 듣게 된다며 씁쓸해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가치 대신 ‘무엇이 되는 것’에 목표를 두어온 탓이 아닐까”라는 친구의 말이 제 뇌리에 오래 남았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 따위만을 목표로 살았기에 그것을 놓는 순간, 인생의 행로를 잃고 만다는 것이지요.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가 우리 삶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을 놓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 대부분에겐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틈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 따윈 사치스런 것으로 치부돼 금기시됐다는 게 더 정확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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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문화방송>이 방영한 ‘열다섯살, 꿈의 교실’이란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한 중학생은 꿈을 묻는 질문에 “저희는요, 고등학교에 일단 잘 가서 대학에 잘 가면 그때 뭔가 꿈이 생기겠지, 다 이런 생각 갖고 그냥” 공부한다고 답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왜 하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냥’ 공부하고 보면 꿈이 찾아오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학생의 생각과 달리, 대학에서도 태반의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많은 대학교수들이 요즘 대학생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고 혀를 찰 정도지요. 자기 자신도, 자신의 꿈도 모르다 보니 돈과 지위에 대한 열망만 높아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한국 사회를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잡힌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위의 예처럼 가족과 친구로부터 소외된 외로운 삶이기 십상입니다.

좀더 행복한 사회는 이런 식의 삶이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주류적 삶의 방식이 되지 않을 때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가 자신의 삶의 주권을 회복하는 게 필수적입니다. 삶의 주권을 되찾는 첫걸음은 자신에 대해 성찰할 용기를 되찾는 일입니다. 삶의 주권을 회복한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겁니다. 아이들은 ‘일단’ ‘그냥’ 공부하는 게 아니라, 꿈을 먼저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부하게 되겠지요. 부모들은 아이들을 무작정 무한경쟁에 내모는 대신 좋은 교육을 찾아나서게 될 거고요. 남성들은 자신의 일을 통제하면서 좀더 관계지향적인 삶을 모색할 수 있을 테지요.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