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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슬픈 연대 / 한홍구

등록 :2009-04-26 21:12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세상읽기
지방의 결혼식에 가는 길에 ‘질주 2009’를 따라 서산과 광주에 들렀다. ‘질주 2009’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자들이 전국의 장기투쟁 사업장을 10여일간에 걸쳐 방문하는 계획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최저임금에서 20원을 더 받는 동희오토 노동자들을 10원 더 받는 기륭전자 해고자 등이 찾아가 위로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만 해도 6개월 정도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싸울 수 있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1년째 싸우는 사업장은 장기투쟁 사업장 축에도 끼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

서산은 전 생산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여 자본가들에게 꿈의 공장이라 불리는 동희오토가 있는 곳이다. 얼마 전 모터쇼에서 자동차산업 비정규직들이 선지를 뿌린 일이 있었는데, 이때 선지를 뒤집어쓴 ‘모닝’을 만드는 곳이 동희오토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장소가 공장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 서산경찰서 앞이란다. 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해본 게 언젠가 의아해하다가 사연을 들어보니 참담하기 짝이 없다.

동희오토 사내 하청지회의 이백윤 지회장 등은 ‘질주 2009’를 처음 기획한 사람인데, 출정식 날인 4월21일 서산경찰서에 연행되었고, 유치장 안에서 경찰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이들이 항의하면서 국가인권위에 제소하겠다 하니 폭행 경찰은 당당하게 신분증을 보여주며 “제소할 테면 해라, 나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고 큰소리쳤다는 것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경찰이 고문을 일삼으며 “너 같은 놈 하나 어떻게 된다고 내가 털끝 하나 다칠 것 같으냐”고 엄포 놓던 때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정부가 국가인권위를 우습게 보니 일선 경찰서 유치장에서 금방 이런 일이 벌어진다. 동희오토 사람들은 폭행 경찰을 검찰에 고소했다. 가해자의 입에서 ‘어디 한번 해보라’는 오만한 말이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검찰과 법원의 의무이다. 정규직 제로에 고등학생 주유소 알바 수준의 시급으로 완성차를 뽑아내는 동희오토의 고용 모델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산경찰서의 폭력 모델도 전국으로 확산될 것인가? 숙소에 돌아와서 본 마감뉴스는 학습지 노조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혜화경찰서에서 폭력 사태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광주에 오니 로케트전기 해고자들이 옛 도청 앞 교통관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철탑 위에서 45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용산의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랐듯 힘없는 이들이 높은 곳에 오른다. 지금 이 땅에 가족과 떨어져 높은 곳에 올라 지난밤을 보낸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정부는 이들을 진압 대상으로만 볼 뿐 문제를 풀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 장관 윤증현은 비정규직에 대해 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라는 투로 대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터무니없이 악화되고 있지만, 그 책임이 현 정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권이 터를 잡고, 노무현 정권이 길을 닦고, 이명박 정권이 ‘무한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급 3800원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복직되는 것만을 유일한 꿈으로 삼으며 몇 년 동안 싸워온 해고자들은 단식, 고공농성, 점거, 재판에서 최근의 선지 쇼까지 안 해본 게 없다. 도대체 해고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먹고살았을까? 코오롱 해고자들을 위해 구미공단 여러 공장에서 아직 잘리지 않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2천원씩 모아주는 돈이 다달이 220만원이란다. 그 어려운 처지에서도 매달 30분은 해고자들을 위해 일한 셈이다. 자기가 너무 힘들어도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돕는 것이다. 세계 11위의 경제부국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슬픈 연대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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