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을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을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해는 1979년이다. 1982년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최종 합격은 9수 끝 1991년이었다. 신림동 고시원에 있기도 했고, 아버지가 재직 중이던 연세대에서 초기엔 권영세 의원(77학번, 1983년 합격)과 후기에는 나경원 전 의원(82학번, 1992년 합격) 등과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9수를 하려면, 우선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멘탈이 강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덜 공부해야 한다. 신림동에서 잠깐 동안 함께 공부했던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윤 대통령은 오전 늦게 후배들을 이끌고 아침 겸 점심을 오후 늦게까지 먹고, 다 같이 관악산에 올라갔다가, 저녁 무렵 먹자골목인 녹두거리로 다시 내려오는 일이 꽤 많았다 한다. 또 본인이 직접 밝히기도 했지만, 동양철학·우주과학 등 온갖 잡학에 관심을 빼앗겨 밤새 수험서 아닌 책들을 탐독할 때도 많았다. 어떤 이슈도 모르는 게 없으니, ‘59분’ 별명이 붙게 됐다.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등 양자역학 과학자들 앞에서 ‘양자과학기술 현재와 미래의 대화’를 주재한 적이 있다. 비공식 자리에서도 양자역학에 대해 윤 대통령이 많이 이야기하고, 교수들은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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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험생 시절로 돌아가면, 막판엔 후배들을 가르쳤다. ‘이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족집게 강사 노릇도 했다. 그 말 들은 후배는 합격했는데, 정작 윤 대통령은 떨어졌다. 이유를 물으니, “안 봤어”라고 답했다. 마지막 매무새가 꼼꼼치 않고 헐거운 것이다. 9수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윤 대통령 사법연수원 동기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84학번 외교학과), 강용석 전 의원(88학번 법학과) 등이다.

지금 윤 대통령은 총선에 참패해 5년 내내 여소야대에 처하게 됐다. ‘탄핵’, ‘임기단축 개헌’ 등의 단어가 시사프로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나온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지난 22일 예고도 없이 브리핑룸을 두 차례나 불쑥 찾아 직접 정진석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임명을 알리고 1년5개월 만에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했다. (대통령이) ‘기자 질문 받아’가 다음날 신문기사 제목이었다. 대통령은 웃는 낯이고, 일부러 그런 척하려는 것일 수 있으나, 여유로워 보였다. 대개 정권 초기 분위기 좋을 때,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수석들을 브리핑룸에서 직접 소개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말하며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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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룸 걸어잠그고 수석·비서관들만 앉혀놓고 대국민 담화 하던 때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들 ‘대통령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대개 ‘말’로는 바뀌겠다고 하면서, ‘행동’이 안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은 ‘말’로도 바뀌겠다고 한 적이 없다. 그날 브리핑룸에서도 ‘국정 운영이나 소통 방식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메시지를 낼 때 평균적인 국민들이 이해하고 알기 쉽게 하자는 뜻”이라며 “2년 동안 국정과제를 설계하고 집행하는 쪽에 업무 중심이 가 있었다. 지금부터는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더 설득하고 소통하겠다”고 했다. 참모들에게 ‘바뀌라’고 지시한 것이다. ‘방향은 제대로 세웠으니, 제대로 알려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평균적인 국민들’이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가.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가난하면 자유 몰라”, “부정식품이라도, 없는 사람은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결별하며 지지율이 추락할 때, 극적으로 화해하며 서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거부했던 이 대표 제안인 ‘출근길 아침인사’도 했다. 그러나 몇달 뒤, 이준석 대표 비난 메시지에 ‘체리 따봉’ 이모티콘을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보냈고, 얼마 뒤 이 대표는 당에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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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취임 2년 동안 자잘한 의전 실수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국군의 날 ‘부대 열중쉬어’ 생략, 영국 총리공관 앞 지나치기, 나토 정상회의 입장 시 거꾸로 된 부부 위치, 사진 촬영 위치 몰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안내한 일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긴장을 하지 않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참모들의 말을 흘려듣기 때문이다. ‘실수’ 뒤에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된 이후 여러번 낙방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부산 엑스포 유치, 총선에서 모두 참패했다. 9수를 채우려면 앞으로 5번을 더 겪어야 하는가. 과거 9수는 개인 몫이지만, 지금은 국민들이 함께 겪고 있다.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