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의대 증원 찬성 쪽 패널로 출연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왼쪽)와 반대 쪽 패널인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이 토론하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지난달 20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의대 증원 찬성 쪽 패널로 출연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왼쪽)와 반대 쪽 패널인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이 토론하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김영희│편집인

 지난주 뉴욕타임스는 미국 뉴욕에서 가장 가난하고 조기 사망률이 높은 자치구인 브롱크스에 있는 아인슈타인 의대의 무상교육 실시 소식을 전했다. 이곳 교수 출신의 93살 현 이사장이 형편이 어려운 이들로 학생층을 더 넓혀달라며 10억달러(약 1조3360억원)를 기부한 덕이다. 미국 사회의 저력을 느끼게 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부러워하다가, 이 학교 학생 절반이 20만달러 학자금 빚을 안고 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한국 의대생은 어떨까. 3년 전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한국장학재단 자료를 보면, 2020년 전국 의대 신입생 가운데 소득 1~8구간 해당자는 19.4%였다. 소득 9·10구간이 80%가 넘는 셈이다. 반면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 의대생의 50% 정도가 소득 상위 20%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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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다고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교육을 비롯한 투자가 아무리 많았다고, 환자보다 돈을 앞세우는 의사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의대 증원이 추진될 때마다 극단적으로 터져 나오는 의사들 반발이 돈벌이와 무관하다고 볼 국민은 거의 없다. 적어도 이번에 의사 집단이 비급여항목 끼워팔기를 막는 혼합진료 금지를 비롯한 필수의료 패키지의 백지화까지 요구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이해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전공의의 값싼 장시간 노동에만 의존하는 병원, 이런 희생을 당연시하는 정부와 사회,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2.6배인 1인당 외래진료, 필수과는 기피과가 되고 미용·성형 쪽만 성행하는 구조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은 하는 건가? 그랬다면 정부에 말만 하지 말고 필수의료 패키지를 뒷받침할 재정계획과 구체적 목표를 약속하라고 압박하는 게 상식이다. ‘2천명’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강경으로만 치닫는 정부 대응과 당분간 더 심해질 의대 쏠림에 우려가 크지만, 단 하나의 기득권도 놓지 않겠다는 의사집단의 ‘민낯’을 본 여론이 좀체 의사들 쪽으로 돌아서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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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의사들의 ‘밥그릇’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해온 거의 유일한 의료계 인물이다. 지난달 문화방송 ‘100분토론’에선 의사의 공급 부족을 설명하면서 2019년 2억원 남짓하던 종합병원 봉직의 연봉이 최근 3억~4억원까지 올랐다고 말해 의사들의 반발을 샀다. 토론 직후 대한의사협회는 ‘교수님! 제자들이 왜 그러는지는 아십니까’ 제목의 신문 광고를 내며 그를 사실상 공개저격했다. 지난해 10월엔 선진국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의 의사 선발노력을 언급한 뉴스1 칼럼에서 “성적 상위 1%만 실력 있는 의사가 된다는 주장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가짜뉴스”라고 써 의료계를 뒤집어놨다. 의협이 징계 방침을 밝히고 대한개원의협의회는 그가 참석하는 모든 회의체에 불참한다는 성명을 냈다.

사실 김윤은 응급실 문제나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방점을 둬왔던 전문가다. 지금도 의대 증원보다 의사 배분과 전달체계 개선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전 정부 사람’으로 분류된 탓인지, 현 정부가 이번 정책 수립에 그의 의견을 들은 일도 없다. 왜 김윤은 정부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며 의사의 ‘공적’을 자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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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을 마치고 “약자들이 좀 나아지는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택한 의료관리학에서 그의 첫 주요 관심은 응급의료체계였다. 1995년, 1997년 잇달아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깨달은 건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좋은 정책 제안도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1999년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을 공동연구해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골든타임 내 신속하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비율을 의무기록을 토대로 조사하니 50%가 넘었다. “하지만 정부는 대외비로 보고서를 분류하더라.”

다음해 한국방송이 이 자료를 입수해 취재를 더해 연이틀 9시 뉴스의 머리로 보도하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국회가 나서 응급의료기금이 대폭 확대됐다. “그런데 보도 당시 의사들의 첫 반응은 ‘누가 흘렸냐’는 것이었다. 이번이 기회니 고쳐보자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사 집단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계기였다.” 이후 주치의제도, 의료전달체계, 수가 같은 지불제도 개선 작업에 참여하면서 번번이 의사들의 강고한 벽에 부딪혔다.

의사들에 대한 설득을 ‘포기’한 그는 지난해 50편 가까운 칼럼을 각 매체에 기고하며 의료개혁의 필요성을 직접 국민에게 알리는 데 나섰다. “정말 몇년 안에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10년 뒤 고령화만 문제가 아니다. 당장 2026년께부터 세브란스·아산·서울대 등 수도권에 건설 중인 전체 6천여 병상 병원들이 예정대로 개원을 시작하면 그나마 남아있던 지방병원 의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의대 증원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다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엔 3천, 4천이 될 거다. 이건 정치적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심각성과 고통에 비례해 커지는 것이니까.”

최근 의대 증원에 찬성하거나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에 반대하는 의사들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익명이다. ‘배신자’를 낙인찍는 의사들의 집단문화가 그만큼 강고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에스엔에스나 댓글 등에서 그를 향한 공격과 비난은 일상이 됐다. “동기나 선후배들과 대놓고 싸우는 건 피하려고 해왔다. 에둘러 말하거나 유보적 조항을 붙이고. 하지만 의사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생각을 벗어나자고 마음을 먹으니 정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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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그의 문제 제기 방식이 지나치게 거칠고 도발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의사집단의 반대를 뚫지 않으면 의료개혁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김윤의 외로운 싸움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편집인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