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게티이미지뱅크
비빔밥. 게티이미지뱅크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한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아이돌과 드라마 등 문화예술을 거쳐 화장법과 요리법 등 생활양식으로까지 퍼지고 있다. 2023년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요리법은 ‘비빔밥’이었다.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대국일 뿐만 아니라 문화강국이다. 한류의 저력은 어디서 오는가?

디지털혁명이 핵심 변수다. 세계에서 가장 연결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페이스북이 있기 전 싸이월드가 있었고, 레딧과 포챈(4chan)이 미국에서 문제 되기 전 디시인사이드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켰다. 디지털기술의 최첨단은 미국 실리콘밸리이지만 디지털문화의 최전선은 대한민국이다. 가장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디지털혁명의 혜택과 병폐를 맛볼 수 있다. 가족 기반의 오프라인 공동체가 붕괴되고 부족화된 온라인커뮤니티가 득세한다. 한류는 디지털문화 현상이다. 한국의 앞서간 사이버 유행이 전세계에 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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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때도 인쇄술, 증기기관 등 기술은 유럽, 즉 대서양 동안에서 만들었지만 그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문명을 선도한 것은 아메리카, 즉 대서양 서안이었다. 디지털혁명도 비슷한 양상이다. 캘리포니아, 즉 태평양 동안에서 만들어진 인터넷, 블록체인 등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문화를 제시하는 것은 동아시아, 즉 태평양 서안이다. 코로나19를 통해 전세계가 확인했다. 한국, 대만 등 동양의 디지털 거버넌스가 서양보다 앞서 있다. 케이(K)-방역과 케이팝은 디지털선진국의 증거다.

디지털혁명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다. 1차 디지털혁명이다. 산업혁명의 기반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었다. 생각을 일렬로 늘어놓는 텍스트의 보급은 이성의 시대를 열었다. 디지털혁명의 기반은 저커버그의 소셜미디어다.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와 오디오와 비디오로 심상을 전달한다. 가상현실(VR) 기술이 발달하면 곧 오감으로 교류할 것이다. 문자 발명, 문명의 시작 이후 처음 있는 대전환이다. 고대의 부활, 원시반본이다. 디지털노마드, 즉 유목민이 주도한다. 춤과 노래를 매개로 한 부족사회가 돌아온다. 와이파이는 텔레파시고 블루투스는 염력이다. 마법이 일상이다. 디지털혁명은 영성의 시대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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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시원은 풍류다. 한반도 고유 신앙 풍류도는 유교, 불교, 도교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도다. 신라 화랑들이 풍류도, 풍월도를 따랐다. 화랑도, 신선도, 국선도 등으로 불린다. 9세기 신라의 최치원은 당나라로 유학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다 귀국해 이렇게 썼다. “국유현묘지도 왈풍류”(國有玄妙之道 曰風流).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는데 풍류라고 한다. “포함삼교 접화군생”(包含三敎 接化群生).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고 뭇 생명이 접화하는 것을 기본정신으로 한다.

접화란 무엇인가? 접(接)은 ‘교접’할 때 ‘접’이다. 섹슈얼한 말이다. 접촉, 접속이란 뜻이다. 사랑이다. 화(化)는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는 작용이다. 그렇게 만들거나, 된다는 뜻이다. 변화, 진화다. 결국 접화란 사랑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만물과 하나 되어 공진화한다. 모든 종교를 포함하고 모든 생명을 접화하는 길이 풍류도다. 오늘날 한국은 유불선에 더해 기독교까지 받아들였다. 포함사교다. 중국보다 유교적이고 인도보다 불교적이며 미국보다 기독교적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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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은 미국 대중음악, 즉 흑인 음악 따라 하는 백인 음악을 황인이 따라 한 결과다. 신중현, 조용필 등 케이팝의 아버지들은 미8군 엔터테인먼트로 시작했다. 재즈와 블루스와 로큰롤을 하다가도 민요와 엔카와 트로트를 할 수 있어야 했다. 미국에서는 문화의 용광로냐 샐러드 볼(bowl)이냐로 다문화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한다. 용광로는 모두 녹여서 획일화하지만 샐러드 볼은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한 채 섞인다.

한국의 다문화는 비빔밥이다. 샐러드 볼과 비빔밥의 차이는 알다시피 장이다. 고추장, 된장으로 비비면 각 재료의 맛을 살리면서도 한 차원 높은 조화가 생긴다. 비빔밥이야말로 풍류다. 그릇에 담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접화한다. 한류의 비법은 비빔밥에 있다. 타이인, 일본인, 중국인도 한류 아이돌이 될 수 있다. 교회도 성당도 절도 좋다.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바뀌는 힘. 항아리 속 김장이 무르익어가듯이 다 같이 업그레이드되는 길. 풍류는 한류의 뿌리이자 미래다. 인구절벽 넘어 다문화사회로 나가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