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일대에서 열린 금속노조의 ‘2023 불법 파견 대법원 조속 판결 촉구 2차 공통 투쟁’에서 경찰이 노숙 농성에 돌입하려는 참가자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일대에서 열린 금속노조의 ‘2023 불법 파견 대법원 조속 판결 촉구 2차 공통 투쟁’에서 경찰이 노숙 농성에 돌입하려는 참가자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희원 I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검찰독재”는 맥거핀(영화에서 이야기 전개에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인 양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장치)이다. 민생의 기반을 멋대로 허물어버리는 정책적·사상적 폭력이 사정 없이 덮쳐오는데, “검찰독재”라는 말에 담기지 않는 진짜 문제들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응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쌓여 있고, 하루속히 머리를 맞대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우리의 시선을 자꾸만 다른 곳으로 돌린다.

우리 앞에 놓인 앞날을 잠깐 들여다보자. 내년도 정부 예산안 이야기다. 정부는 취약계층 공공의료,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지방의료원 현대화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했다. 노인보호기관 예산과 노인요양시설 확충 예산도 줄였다. 고용평등상담실 지원은 중단되었으며, 청소년 노동권 침해 상담 예산과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시럽급여”라고 조롱당한 실업급여 예산도 깎였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과 학교 내 돌봄 공간 조성을 위한 예산도 줄었고, 성·인권 교육 예산은 아예 사라졌다. 경찰의 여성 대상 범죄 예방과 보호 예산은 거의 반토막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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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복지가 아닌 약자복지”라는 말장난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이런 기조가 계속되면 사회안전망은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취약계층은 더욱 고통받을 것이다. 현 정부의 정책에는 구조적 불평등은 존재하지 않으니 “낙오자”를 구제할 필요도 없다는, “바람직한” 취약계층만 선별해서 지원하겠다는 메시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공정한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며 자기 몫을 알아서 챙기라는 것이다. “국가는 사라져도 시장은 살아남는다”고 하니, 시장에서 살아남는 자들은 마치 영원히 건재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신자유주의 정책은 삶의 안정성을 뒤흔들고 사회불안을 높인다. 불평등이 악화하고 삶의 질이 낮아지면,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불만과 적대감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의 자산 불평등 지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소득 불평등도 5년 만에 다시 악화했다. 불안정 노동과 빈곤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안의 고통과 폭력은 증가한다. 그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자살률과 우울증 발병률 1위라는 통계로 나타날 수도, (‘일가족 동반 자살’이라고 잘못 불리는) 일가족 몰살의 비극으로 드러날 수도, 사회 일반을 향한 무차별 범죄의 형태로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 증폭되는 사회 갈등과 사회불안에서 초래되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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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신자유주의가 필연적으로 사회불안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이 문제의 궁극적 해답은 부의 재분배와 사회안전망 확충이겠지만, 신자유주의 정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이들의 해법은 무엇일까? 바로 공권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로이크 바캉은 공격적인 처벌 기제야말로 신자유주의 국가의 필수적인 통치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공권력 동원과 처벌 강화는 범죄 불안이 아닌, 신자유주의 기조에서 비롯된 사회불안 때문이다. “잠재적 위험 요소”인 불안정 노동자와 빈곤 계층이 널리 퍼져 있는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정권은 사회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공권력을 적극 활용한다. 불만을 통제하고, “위험 집단”이라고 낙인찍고, 국민을 돌보지 않는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각종 처벌 기제를 전시하고 활용한다. 그래서 바캉은 신자유주의 정부를 “작은 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불완전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경제적 측면만 보면 작은 정부이지만, 공권력의 측면에서는 큰 정부이기 때문이다. 즉, 신자유주의 국가는 작은 정부와 큰 정부의 모습을 동시에 띠는 야누스의 얼굴을 갖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얼굴도 그렇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는 그저 “검찰독재”가 아니다. 공권력의 남용과 형벌의 엄포 속에 누구의 삶이 더 취약해지는가? 집회와 시위를 불법화하면 누가 범죄자가 되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수준의 절망이 도사리고 있으며, 오늘의 생존을 걱정하는 이는 누구인가? 자포자기한 사람들을 엄벌한다고 사회가 안전해지지 않는다. 더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기 전에, 더 많은 재난과 죽음이 닥쳐오기 전에, 이 시급한 위기에 맞서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한국 정치는 언제쯤 이 교착상태를 극복하고, 좀더 근본적인 의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