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한마디로 기괴했다. 또한 퇴행적이었다. 회의 형식에서 발언 내용에 이르기까지 그렇지 않은 게 없었다. 지난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전략회의’와 이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날 회의는 10시4분에 시작됐다. 애초 11시10분까지 70분으로 예정된 회의는 30분가량을 초과하고서야 끝났다. 보통 분 단위로 치밀하게 계산돼 치르는 게 ‘브이아이피(VIP) 행사’다. 하여 ‘뭔가 깊은 토의가 있었겠구나’라고 상상할 법하다. 하지만 참석자들이 전한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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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의’는 의논을 하거나 질의응답이 자유롭게 오가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원맨쇼’에 가까웠다. 회의 주재자인 윤 대통령은 언론에 공개된 ‘머리 발언’에 15분여, 비공개로 이어진 발표와 토론 뒤의 ‘마무리 발언’에 20여분을 더해, 대략 35분가량을 복지와 사회보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파하는 데 할애했다.

정작 발표와 토론은 짧았다. ‘윤석열 정부의 복지국가전략’이란 거창한 발표를 한 조규홍 복지부 장관 등 세명의 발표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각 3분이었다. 사회보장 관련 정부 내 위원회 소속 민간위원들의 토론, 관계부처 장관들의 답변 시간은 각 2분 남짓 주어졌다. 이마저도 내용과 맥락, 토론자까지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이뤄졌다. 권위주의 시대에서나 봄직한 퇴행적인 회의 광경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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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시대착오적이고, 숫제 해괴한 것은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다. “현금복지는 선별복지로 약자복지로 해야지 보편복지로 하면 안 된다 이겁니다”라는 발언부터 그랬다. 한마디로 복지의 문법을 모르는 무지한 발언이다. 복지의 기본이 바로 ‘현금급여’이기 때문이다. 실업이나 질병, 노령 등으로 인해 소득을 잃었을 때 ‘최저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지급하는 현금성 소득보장이야말로 ‘베버리지 보고서’가 강조한 사회보장의 원칙이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궁핍으로부터) 자유의 철학’에 기반한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의 복지제도 또한 이미 선별만이 아닌 보편적 현금복지로 짜여 있다. 국민연금이 대표적인 ‘현금복지’이자 보편적인 사회보험제도다. 아동수당이나 현 정부 들어 도입한 부모급여도 현금복지다. 물론 실업부조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같은 약자를 위한 선별성 현금복지도 있다.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복지 지출 분야는 이런 소득 보장성 현금복지이자 보편복지다. 우리나라는 턱없이 모자라 여전히 더 적극적인 확대가 필요한 복지 분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전체 복지지출(2019년 기준, 12.2%) 가운데 의료 및 보육 등 현물서비스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6.9%(2019년 기준)로 남부 유럽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반면 현금지출은 국내총생산의 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에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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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서비스에 관한 발언은 무지를 넘어 위험하다.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도 시장화가 되고, 산업화를 하고, 경쟁 체제가 되고 이렇게 가야 합니다.” 본말이 전도된 발언이다. 복지와 사회보장의 본질은 경쟁을 통한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 즉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 복지국가의 역사는 이런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복지가 고용과 성장과 선순환하는 길이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더욱이 우리의 사회서비스 시장은 과잉 경쟁으로 인한 시장 실패와 서비스 품질 저하가 구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도 오래다.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보건복지부는 서비스 산업부로 생각해야 한다”는 등의 괴이쩍은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하지만 공개된 발언은 물론 더 길고 더 강했던 비공개 발언까지 종합하면, 그의 이날 발언은 강도나 논리 등에서 ‘윤석열의 복지관’을 ‘날것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결정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대통령은 자료에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수십년간 복지를 전공한 전문가들 앞에서 조금의 주저함 없이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펼쳤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실상 주목해야 할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따로 있는데, 바로 “재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회보장은 우리 사회(를) 스스로 갉아먹는 게 되죠”란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 복지 정책 기조와 맞닿는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의 복지 발언은 시장화와 산업화를 앞세운 ‘위장된 복지억제론’이란 생각이다.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