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경, <화장실 프로젝트>, 2023, 비누. 코리아나미술관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전
신미경, <화장실 프로젝트>, 2023, 비누. 코리아나미술관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전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아직 봄꽃이 만개하려면 몇 주 더 지나야겠지만, 조각가 신미경(56)의 전시가 열리는 코리아나미술관에는 이미 꽃향기로 가득하다. 비누가 작품의 재료이기 때문인데, 최근에 제작된 파스텔 색조의 비누 회화에서는 표면이 촉촉하게 수분과 윤기를 머금고 있어 향이 한결 진하게 퍼져 나온다. 하지만 전시장 한구석에는 향을 뿜기는커녕 가뭄에 갈라진 논처럼 쩍쩍 균열이 생긴, 한때는 비누였으나 지금은 화석처럼 변해버린 조각상도 보인다. 바로 <풍화 프로젝트> 조각품으로, 화산 폭발이 일어났던 옛 로마의 도시, 폼페이의 폐허에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를 낸다.

<풍화 프로젝트> 시리즈는 오래 묵은 비누 조각품을 풍화된 모습 그대로 레진이나 브론즈로 주물을 뜬 작품인데, 동시대 미술품이지만 박물관의 유물 같은 느낌이 물씬 난다. 박물관은 시간을 멈추게 하는 곳이고, 그곳의 유물이 된다는 건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유물에는 생명감은 없다. 마치 화석이나 박제된 동물처럼 영원히 지속하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역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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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 놔둔 비누 하나가 건조해져서 버린 기억이 난다. 지난 코로나19 시절 동안 항균 성분이 든 액상형 세정제로 인해 원래 사용하던 비누를 도통 쓰지 않았더니, 더 이상 비누의 기능을 못 하고 뻣뻣하고 부스러지기 쉬운 재료로 바뀐 것이다. 비누는 물 묻혀 문지르면 거품을 내며 매끄럽게 닳아가고, 사용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떡떡 갈라지며 거칠게 변성해 버린다. “얼마나 따분한가, 멈춰 서는 것, 끝내는 것, 닳지 않고 녹스는 것, 사용하지 않아 빛을 내지 못하는 것은.”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이 남긴 이 유명한 문구는 비누의 속성과도 관련이 있는 듯 여겨진다.

신미경은 비누 조각품을 화장실에 비치해두고 관람자들이 손을 씻어 서서히 닳아가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하고, 아니면 실외에 놓고 비바람과 햇빛 아래 풍화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알면서도, 전시장 화장실에서 손에 물을 적신 후 아이보리색 귀부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면 멈칫 망설여진다. 일단 미술작품은 손대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아까워서다. 참고로 나는 테디베어 모양의 초콜릿도 선뜻 먹지 못하는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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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면서 나는 번아웃이 된 사람을 떠올렸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번아웃의 종말>에서 저자인 조나단 말레식은 번아웃은 흔히 생각하듯 심신이 다 타버려서 재가 되어 버린 상태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고 화두를 꺼낸다. 앓고 있는 사람마다 강도가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번아웃 스펙트럼’이라고, 서로 관련된 여러 증상을 묶어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지치지 않고 멀쩡해 보여도, 넘치던 열정과 재능을 상실한 채 머릿속이 하얘지는 번아웃을 경험하는 이도 있단다.

말레식은 그리스어로 무관심이라는 뜻의 아세디아(acedia)에 이른 고대 수도사들의 이야기를 한다. 무관심이라고 하니 언뜻 세속의 고민을 떠나 고차원적인 종교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세디아는 결코 그런 바람직한 무관심은 아니다. 갑자기 아세디아를 앓게 된 사람은 시간이 알맞게 흘러가 주는 삶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다. 마치 살아있는 채 화석으로 변해버린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의지도 없이 하루가 50시간도 넘게 느껴진다고 한다. 시간 감각을 상실한 수도사들은 방황하다가 결국 구도의 길을 포기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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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신학자들은 아세디아를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나태함(sloth)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나태한 자는 어서 죄를 뉘우치고 더 열심히 일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아세디아 상태는 의도적으로 피우는 농땡이나 직무태만과는 달리, 성실을 통해 치료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일종의 번아웃 증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염두에 두며 살아간다. 운동을 시작하고 끝내며, 업무를 마치기를 기다리는가 하면, 약속에 늦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차가 밀리는 길 위에서도 늘 시계를 본다. 동료에 비해 취직이나 승진이 늦어진 것이 초조하기도 하고, 무엇엔가 뒤떨어진 것 같아 불안할 때도 가끔 있다. 어쩌면 시간이라는 눈금에 과도하게 신경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면서 시간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겪은 비누 작품을 보며,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