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맞아 경축해야 할 유일한 한 가지는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저항이다. 이는 동맹국들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인 자신들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용감한 저항은 또 다른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한 우크라이나 언론인은 이렇게 평가한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상황에서도 자국의 정의에 대한 열망도 잃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인 대부분이 목숨을 걸고 러시아의 대량 학살 위협에 맞서고 있음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의 정의를 향한 열망은 이전보다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들의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우크라이나가 어떤 모습이 돼야 하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고민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우크라이나에서는 부패 척결 노력도 하고 있다. 이 시도가 “전쟁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급진적인 질문들로 이어지기 바란다. 우크라이나는 그저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를 따라잡고 서구 대기업들의 경제적 식민화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우크라이나는 폴란드가 그랬던 것처럼 신보수주의적 반동에 참여할 것인가? 우크라이나는 사회민주주의를 소생시키고자 노력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적 반응이다. 진정 러시아의 식민주의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또 다른 신식민주의 사례와 연결해 생각해야 한다. 얼마 전 킴 존슨 영국 노동당 의원이 연설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교했다. 존슨 의원은 많은 이들이 러시아의 ‘불법 점령’과 우크라이나의 ‘영웅적 저항’은 이야기하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정착촌 확대, 인종주의에 관해서는 이런 식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억압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려 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예상 가능하게도 그는 이 발언 뒤 반유대주의자라는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새로 출범한 이스라엘 정부가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사실상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존슨 의원이 이스라엘을 러시아와 비교한 일은 적절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해 12월 “유대 민족은 이스라엘 땅의 모든 부분에 대해 배타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권리를 갖는다”고 밝혔다(유대 전통에서 이스라엘 땅은 ‘유대와 사마리아 땅’, 즉 서안 지구를 포함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 지구를 관리하는 법을 ‘점령법’에서 ‘이스라엘 국내법’으로 변경할 예정이라는 점도 드러냈다. 이는 사실상의 합병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서안 지구가 이스라엘의 일부가 된다면 서안 지구에 사는 200만명 훨씬 넘는 팔레스타인인도 이스라엘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렇게 되도록 놓아둘 리 없다. 가능한 한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이스라엘 밖으로 추방하거나, 한 인종 집단이 다른 인종 집단을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지배하는 제도화된 체제, 말하자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사법부를 정치권력에 종속시키려는 새 우파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연일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십만명 넘는 이스라엘 시민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겪게 될 문제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 우파 정부의 사법 정비가 이뤄질 경우 가장 큰 고통을 받게 될 이들은 팔레스타인인임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실천해야 할 진정한 정치적 행위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규모 민주연합을 형성하고 여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을 포함하는 일이다. 이는 이스라엘 정치의 불문율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급진적 변화를 이루는 일만이 이스라엘이 또 다른 인종주의적이고 종교적인 근본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번역 김박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