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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칼럼] 북핵, 억지론과 인정론을 넘어

등록 :2022-09-25 18:02수정 :2022-09-26 02:42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자꾸 북핵 언급 말고 한반도 평화공존만 얘기하자” “북한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야 실마리가 나온다, 이제 미국에도 중국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식과 순리, 그리고 실사구시의 원칙에 따라 돌파구를 찾자는 원로의 경륜 어린 혜안이 어느 때보다 울림이 크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문정인 | 세종연구소 이사장

한반도 상황이 위태롭게 전개되고 있다. 9월8일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국가핵무력정책 법령의 채택을 선포하며 이를 ‘특기할 사변’이자 ‘역사적 위업’이라고 묘사했다. 나아가 “핵은 우리의 국위이고 국체이며 공화국의 절대적 힘이고 조선인민의 크나큰 자랑”이라고 부연하면서 북의 핵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이라고 못 박았다.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

새로 채택된 법령은 이전에 모호했던 핵무력의 사명, 구성, 지휘통제, 핵무기 사용 결정의 집행과 사용 원칙, 사용 조건, 핵무기의 안전한 유지관리 및 보호, 핵무력의 질량적 강화와 갱신, 그리고 확산(전파) 방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이른바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가’로서 북의 지위를 대내외에 천명하려는 시도다. 특히 과거의 보복공격 위주 억지 전략에 더해 핵무기의 선제적 이용과 전술핵 배치를 공식화한 공세적 교리의 도입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정부의 대응은 대북 핵 억지력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9월18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확장된 억제력을 강화할 방안을 찾고 싶다”며 “확장 억제는 유사시에 미국 영토 내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뿐 아니라 북한이 핵으로 도발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는 모든 패키지를 총체적으로 망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당국은 외교·국방 차관급 대화 채널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가동을 통해 윤 대통령의 대북 억지 구상을 구체화했고 북한의 핵 위협, 핵 사용 임박, 실제 핵 사용 등 세 가지 단계별로 군사적 대응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확장억제수단 운용연습(TTX)도 연내에 실시한다고 한다. 다만 이러한 억지 강화의 대응전략은 다시 평양의 핵전력이나 교리 강화로 이어져 안보 딜레마의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한편으로는 대북 확장억지력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담대한 구상’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한다면 밝은 경제적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대화 촉구 메시지를 북에 보내왔다. 그러나 평양은 이러한 제안을 ‘담대한 망상’으로 폄훼하고 남쪽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양보할 수 없는 절대 목표로 설정하고, 북의 ‘선제 핵 사용’ 가능성을 전제로 한 예방타격과 응징보복을 기본 교리로 채택하는 한편, 어떤 경우에도 북한과의 핵 군축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론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대화를 통해 외교적 협상의 물꼬를 트는 일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9월19일 연세대 통일연구원에서 있었던 강연에서 미힐 호헤빈 유럽의회 의원은 한국 정부와 대조되는 주장을 폈다. 북한은 이미 핵시설, 물질, 탄두, 미사일을 모두 보유하고 있을뿐더러 6차례의 핵실험과 소형화·경량화·다종화를 통해 핵전력을 크게 강화한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다. 이를 간과하고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외교 협상의 즉각적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는 남의 그러한 요구를 북이 수용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북한과 평화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그는 설파했다. 이를 위해 유연한 대북제재 정책을 펴고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답이 될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의 비핵화 절대론과 확장억지 강화론이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도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핵을 가진 북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호헤빈의 북핵 인정론도 한국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특히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이는 우리에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비핵화 담론이나 현상 수용론 모두 대안이 되기 어렵다. 말 그대로 딜레마다.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자꾸 북핵 언급 말고 한반도 평화공존만 얘기하자” “북한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야 실마리가 나온다, 이제 미국에도 중국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의 주장은 북한의 핵을 당장 없애야만 평화가 올 것이라고 믿기보다는 평화를 만들어가면서 비핵화의 물꼬를 트자는 평화 견인론, 북한의 의도를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대신 있는 그대로 보자는 전략적 공감론, 미국과 중국을 맹목적으로 뒤따라가는 대신 우리가 대국적 견지에서 해법을 만들어 내자는 창의적 주도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식과 순리, 그리고 실사구시의 원칙에 따라 돌파구를 찾자는 원로의 경륜 어린 혜안이 어느 때보다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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