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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등록 :2022-09-04 18:01수정 :2022-09-05 02:38

지난 5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5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국회사진기자단

[한겨레 프리즘] 정환봉 | 탐사기획팀장 겸 소통데스크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갈등을 겪는 일이 많다. 취재 상대와는 말할 것도 없고 내 마음이 둘로 나뉘어 싸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종종 찾아오는 내적 갈등 중 하나가 친한 사람의 제보다.

단순한 제보고 기사 가치가 있으면 쓰면 된다. 하지만 친한 사람이 직접 얽혀 있는 일이라면 마음이 그렇게 간단해지지 않는다. 그를 의심해서가 아니다. 기사로 쓸 만한가,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나, 상대에게 책임이 있나…. 기사를 쓰면서 자신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답을 내려야 하는 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마저 스스로 학습하는 데이터에 편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편견을 갖게 된다는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 마당에 사적 친분이 기사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료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가족 사건은 충분히 기삿거리가 되더라도 직접 취재하지 않는다. 친한 지인 사건은 다른 기자에게 취재를 넘기곤 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분리는 높은 도덕성 추구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 쓸 내 기사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다. ‘들키지 않으면 그만’일 수도 없다. 한번이 어렵지 두번은 쉽다. 그러다 보면 관성이 되고. 관성은 경계심을 흐린다. 반복되면 더 큰 문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들킨다면 내 기사는 앞으로 계속 같은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안다. 과연 내 기사는 공익을 위한 것이었나. 그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한다면, 내내 마음의 짐이 남을 것이다.

사람인 이상 두 영역을 완벽히 분리할 수는 없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내가 맺어왔던 관계의 총합이 만든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사람에게 축하를 받고 싶은 날이 있다. 그게 공적인 행사라도 말이다. 가령 대통령 취임식 같은 경우다.

지난 5월10일 국회에 4만여명이 모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축하를 위해서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역시 많은 지인을 초대했다. 생애 가장 기쁜 날 중 하루일 취임식에 오래 곁을 지킨 친구나 감사한 이를 초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선이 있다. <한겨레> 보도 등을 보면 윤 대통령 장모의 사문서위조 공범으로 재판 중인 인물과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기소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아들(현 대표)과 아내(주주) 등이 취임식에 초대받았다. 친분이 깊어도 재판 중인 사람 등을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임식에 초대하는 것은 문제다. 그 자체가 당사자나 피해자, 심지어 재판부 등 공적 영역에까지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들킨 셈이다.

두번과 세번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김 여사가 취임식에 초청한 인물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12억원 규모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리모델링 공사를 수의계약했다. 친분이 국가 계약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김 여사가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순방 당시 착용했던 목걸이 등이 수천만원의 고가임에도 재산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통령실은 이를 지인에게 빌렸다고 해명했다. 김 여사가 대통령 부인이 아니라면 허물없이 지내는 통 큰 친구가 있다고 부러워만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부인이기에 액세서리를 빌려준 것이라면 그 관계는 언제든 공적 영역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제 대통령실의 모든 수의계약은 의심받을 것이다. 김 여사의 액세서리 출처도 매번 논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순수한 본심을 오해해서가 아니다. 그러니 오해를 푸는 것이 해결 방안일 수 없다. 두 사람이 공과 사의 영역을 구별 못 한 탓이기에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일로 대통령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사회가 치를 의심의 비용이 너무 크다. 늦지 않았다. ‘취임식 명단이 없다’ ‘정상 계약이다’가 아닌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린다. 사과가 필요하면 하면 된다. 그래야 네번째 사례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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