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가타현 북서 쪽에 있는 제주도 절반만 한 크기의 사도섬은 청정자연이 살아있는 곳이다. 시당국과 주민들은 농업이 주업인 이곳을 따오기가 다시 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따오기는 한국에선 1979년 자취를 감췄고, 일본에선 1993년 마지막 암컷 따오기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1999년 중국에서 따오기 한쌍을 기증받았다. 중국의 도움을 받아 인공번식에 성공해 지금은 200여마리가 1m가 넘는 날개를 펴고 섬 곳곳을 날아다닌다. 주민들은 농약과 비료 사용을 줄이고, 수로와 어도를 만들고, 겨울 논에 물을 대 섬을 따오기가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2008년부터 중국에서 따오기를 기증받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인공번식한 따오기를 2019년부터 세번에 걸쳐 창녕 우포늪에 풀어놓았다. 우리나라의 복원 시도는 중국과 일본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따오기는 한때 한·중·일 우호와 협력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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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섬엔 광산이 있다. 에도시대 초기부터 채굴해온 일본을 대표하는 금광이다. 구리 등 다른 광물도 나온다. 1931년 만주사변, 그 뒤 중일전쟁으로 금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미쓰비시광업은 국책에 따라 사업을 확대했다. 1939년부터는 조선인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규폐증 환자가 많아 생산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1940년 2월 논산 출신 98명을 시작으로 1943년까지 1005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왔다. 노동 조건은 가혹했고, 식비와 침구대, 작업복 구입비를 제하고 실제 손에 넣는 임금은 극소액이었다. 애초 2∼3년 계약 조건으로 모집했지만 강제로 계약을 연장했다. 규폐증에 걸리는 이들도 나왔다. 광업소 기록에는 조선인 노동자 가운데 10명이 죽고 148명이 고통을 피해 도망쳤다고 나와 있다.(히로세 테이조, <사도광산과 조선인 노동자(1939∼1945)>) 사도광산엔 조선인만 동원했지만, 중국인을 동원한 다른 광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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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202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추천서를 냈다. 일제강점기의 일은 지워버리고, 에도시대에 한정해 일본 고유의 전통적 수공업을 활용한 유례없는 광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염치라고는 한푼어치도 찾아보기 힘든 시도가 따오기 복원 협력의 현장이던 사도섬을 역사 갈등의 섬으로 만들고 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