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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확신범에게 용서는 없다

등록 :2021-11-29 05:00수정 :2021-11-29 08:49

[기고] 전두환 사망, 그 이후
27일 오전 전두환씨의 운구차량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7일 오전 전두환씨의 운구차량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삶과 죽음이 일치한 인간도 없다. 그는 단 한 번도 동요하지 않았고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았으며, 후회하거나 반성할 시간을 갖지 않았다. 그는 확신했다. 국민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혼란에 빠진 조국을 지키기 위한 ‘구국의 일념’으로 결행한 것이었고, 재벌들이 건네준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은 원활한 경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우국충정’의 일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쿠데타의 기예와 통치술을 한층 더 발전시킨 ‘역사 속의 영웅’이며, ‘자유대한을 지켜내신 용맹 장군’이다.

그는 한평생 나라를 위한다는 확신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다. 반공이라는 이념의 껍질 아래, 자기만이 나라를 위한다는 벅찬 감정과 상념에 에워싸여 과감히 적을 무찌르는 것을 애국으로 생각한 것이 한국의 반공주의였다고 한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수십년간 이어져 내려온 대한민국 체제의 아들이자, 충실한 구현자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내고, 서거하셨는데 국가장을 치르는 것은 상식이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순리’라고 우렁차게 외치면서, “5·18 주범이라고 했던 고인을 이제 놓아주시고 풀어 달라”고 말한다.

전두환이 죽었다. 공자는 “삶도 잘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말했지만, 삶과 죽음이 분리된 것은 아니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며 죽음은 삶의 마무리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이제 고인이 되었으니, 예우를 갖고 보내자”라는 고상한 말은 죽음을 기화로 우리 생의 기억을 말소시키려는 교묘한 시도에 불과하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1980년 쿠데타는 한번에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1979년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죽음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군부 통치가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을 체포하고 군부를 손아귀에 넣은(12·12 쿠데타) 다음, 4월에는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하여 정부를 장악했다. 이제 전두환은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밀물같이 몰려오는 민주화 요구를 돌파해야 했다. 1980년은 군부 독재를 끝내고 문민 민주정부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역사적 시기였지만, 신군부 세력과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국민 간에 최후의 일전이 광주에서 벌어졌다.

군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국가 운영의 능력과 리더십을 겸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군대 조직에는 경찰, 법무, 건설, 통신, 의무, 종교 등의 기능을 하는 조직이 존재한다. 심지어는 민사 부분까지 있다. 국가와 사회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이 이미 군대 안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군대는 주둔지, 작전지역이라는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매년 수많은 청년들이 ‘사회화’ 교육을 받는 60만이라는 인구를 가진 ‘작은 국가’였다. 이런 이유로 군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많은 경험을 축적했으며, 국가와 사회를 충분히 운영하고 정치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착각한다. 이미 1950년대부터 정치화된 군대는 구정치인들을 부패하고 무능력하다고 비난하였고, 자신들이 깨끗한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쿠데타를 일으키는 명분이었다.

1980년 5월31일 국보위 현판식과 상임위 첫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전두환(맨 오른쪽)과 노태우(맨 왼쪽) 수도경비사령관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1980년 5월31일 국보위 현판식과 상임위 첫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전두환(맨 오른쪽)과 노태우(맨 왼쪽) 수도경비사령관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군대와 사회는 유사한 면이 매우 많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국민적 ‘동의’의 획득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수 없지만, 군대는 그렇지 않다. 이때 등장한 ‘계엄’은 존재하지 않는 동의를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여 침묵과 굴종으로 교체하는 요술방망이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두달 만인 1948년 10월에 여수·순천 지역에, 11월 제주도에 내려진 계엄은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고 현장 사살, 즉결처분 등의 방식으로 많은 민간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한국군 최초의 연합작전은 적이 아닌 여수·순천 시민을 상대로 실시되었지만, 한국군은 이에 대해 한번도 반성한 적이 없다. 민간인 희생을 뒤돌아보지 않는 맹목은 베트남전에서의 민간인 학살, 1980년 광주에서의 학살을 반복하게 했다. 그리고 대중들이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1987년 6월항쟁과 2016년 촛불혁명 때, 군대 동원과 계엄은 실행되지 않았지만 망령처럼 슬그머니 얼굴을 비치곤 했다.

나라를 구하고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은 사회나 국가가 아니라, 군대라는 조직의 이해를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사회와 격리된 채 ‘조직에만 충성’하는 군 지휘관들은 하나회 같은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하여, 지배 엘리트의 지위를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 ‘조국’과 ‘민족’은 그들의 욕망을 군대 넘어 세상에 구현할 수 있는 허울 좋은 언어였을 뿐이었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주도면밀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는데, 전두환의 머릿속에서 쿠데타는 이미 1961년에 마음속에서 확실히 자리잡았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전두환은 육사 후배들을 설득하여 쿠데타 이틀 뒤 서울 태평로에서 ‘혁명지지’ 데모를 벌이게 했다. 육사를 비롯한 3군 사관생도들의 지지로, 불안정하던 쿠데타는 힘을 얻었다. 이후 박정희는 전두환을 매우 신뢰했고, 전두환에게 박정희는 인생의 멘토였다. 전두환은 청와대, 중앙정보부, 경호실, 보안사령관 등을 맡아 권력 중심에서 맴돌았다. 그는 동기들보다 진급이 빨랐고, 하나회는 점점 더 세력을 불려갔다. 박정희 정권 말기,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실세가 되어 차지철 경호실장과 경쟁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1980년의 광주. 민주화기념사업회 제공
1980년의 광주. 민주화기념사업회 제공

광주의 선혈과 오물을 뒤집어쓴 채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유화책과 이벤트를 내놓았다. 통행금지 해제, 두발·교복 자유화, 학원 자유화 조치 등을 실시하고, 일본 관동군 참모 출신 세지마 류조의 조언을 받아들여 88올림픽을 개최했다. 하지만 학살자의 오명을 씻어낼 수 없었고, 국민의 마음속에 묻혀 있던 광주의 쓰라린 상처는 87년 대규모 시위로 터져 나왔다.

4·19혁명이 군부 쿠데타로 좌절되었지만, 80년 ‘서울의 봄’과 광주의 실패는 87년 개헌투쟁과 촛불혁명으로 살아났고 승리했다. 80년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빛과 소금이었다. 기득권층은 대중을 어리석고 변덕스러우며 폭력적이라고 비하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것은 기득권과 제도가 아니라 대중의 힘이었다.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한류의 성장에는 소재와 주제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과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전두환 지지자들은 ‘사랑으로써 고인을 용서’하자며 또다시 죽은 이를 가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확신범인 가해자에게 반성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헛된 일인 것처럼 보인다. 중국의 비판적 사상가 루쉰은 “사람을 무는 개가 물에 빠졌을 때, 그 개를 구해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두들겨 패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개가 뭍에 나와 다시 사람을 문다”고 한 세기 전에 정신이 번쩍 깨는 회초리 같은 글을 남겼다.

전두환은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가해자들의 진정한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노태우와 전두환의 죽음으로, 이제 한 시대가 끝났다는 성급한 주장도 나온다. 가해자 논리가 여전히 울려 퍼지고 피해자들의 절규가 메아리치는 지금, 남아 있는 자들에게 전두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의 시작이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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