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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왜냐면

[왜냐면] 새로운 남북화해 시대, 다른 기억과 문화의 힘 / 송진영

등록 :2018-06-04 18:32수정 :2018-06-04 19:12

송진영
뉴욕주립대 교수

우리가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이다. 역사는 배우고 익히며 논쟁하고 때로는 수정하는 것이지만 기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진 논쟁할 수 없는 깊은 인식이다. 역사는 가르치는 성질의 것이지만 기억은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인식 체계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동안 서구의 학문에서 ‘기억’은 대체로 ‘역사’에 비해서 덜 학문적인 것으로 소외되어 왔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이후로, 특히 홀로코스트를 직접 겪지 않은 세대가 배우거나 기억하는 유대인 학살, 세계대전을 겪지 않은 세대가 다시 쓰고 읽는 전쟁,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역사와 기억에 대한 의미 있는 탐구는 진행 중이다.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포츠담광장) 한가운데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물과 같은 도시적 스케일의 작업들이 건조한 역사 교육을 넘어서 다양한 인식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억’에 관련한 작업의 좋은 예이다.

우리의 경우 한국전쟁을 몸소 겪고 기억하는 세대와, 역사로서 과거를 읽고 배운 세대가 바라보는 남북정상회담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더구나 역사에 대한 교육이라는 것은 그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한없이 취약한 것이어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사람들이 배운 역사와 지금의 20~30대 청년이 배운 역사도 미묘하지만 제각각으로 다른 것이다. 하물며 비무장지대 북쪽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과거에 대한 인식과 남쪽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 된 한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인식한 채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억’에 대한 작업이다. 과거 우리가 집중했던 햇볕정책의 초점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을 통한 경제 협력이었다.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이 사업들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사람들의 ‘기억’이며 이는 곧 문화의 부재를 의미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역사적인 협력 사업의 하루하루 일상에 대해서 기억해야만 했다.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려 하지 않아도 우리가 본래 말이 통하는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일상의 교류, 문화의 교류가 부족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의 남북 협력은 ‘문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생태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 독특하게 이어져 온 각각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보고 즐기고 경험할 것인가? 북쪽이나 남쪽이나 가족들이 함께 보고 즐기고 감동을 받는 문화 교류의 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남과 북이 애타게 소원하는 이산가족의 상시적 만남을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만들어줘서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게 해줄 것인가?

이렇게 문화와 예술의 교류를 통해 함께 어우러질 수 있고 만날 수 있으며 오갈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 말했던 ‘한없이 가지고 싶은 문화의 힘’, 그리고 하나의 통일된 한국을 만드는 에너지로 깊이 쌓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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