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
정치철학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촉발된 촛불정국이 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이르렀다. 그 성과와 기쁨 때문일까? 우린 요즘 ‘시민혁명’이란 말을 자주 쓴다. ‘혁명.’ 세상을 뒤바꾸는 집단적 행위. 그런데 이 혁명의 어원을 찾아 들어가 보면 뜻밖의 의미를 볼 수 있다. 혁명을 뜻하는 레볼루션(revolution)의 라틴어 의미는 롤백(roll back), 즉 ‘거꾸로 되돌리다’이다. 서구 고대인은 혁명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권력이 돌고 도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정리하자면 혁명이란 지배계층 사이에서 지배하는 자들만 바뀌는, 돌고 도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1789년. 혁명의 의미를 온전히 새로운 의미로 바꾸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시곗바늘 같은 규칙적 삶을 살던 칸트의 산책을 멈춘 바로 그 사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역사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점은, 늘 지배당하기만 하던 민중이 광장에서 왕의 목을 단두대로 잘라버린 점이었다. 전원책 변호사가 유행시킨 ‘올 단두대’라는 말에 내재한 단호함은 유럽에서 늘 지배계급이었던 자들에게 지독한 공포로 다가왔다. 반면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오르게 한 프랑스 민중들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통해 우렁차게 선언했다. 이제부터 우리가 ‘통치자’다. 이 역사적 사건은 한나 아렌트가 지적하듯 혁명의 의미마저 바꾸어버렸다. 이제 혁명은 통치권이 더 이상 지배계급 내에서 돌고 도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받는 민중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이렇듯 민중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으나 불행히도 그 시작에 묻혔던 피는 마지막까지 씻어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혁명과 폭력. 프랑스 대혁명이 만들어낸 혁명의 이미지였다. 억압하는 자들이 마땅히 치러야 할 몫에는 처절한 보복이 당연히 들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소위 20세기 들어 체계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혁명론에도 폭력의 그림자는 그대로 스며 있다. 소위 혁명 1세대 이론은 응집심리이론으로 ‘사회에서 주어진 가치와 실제로 얻는 것의 차이가 클 때 사람들의 분노로 이어지는 현상’이 혁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물론 분노의 끝은 폭력이다. 차머스 존슨이 제안한, 혁명이란 ‘사회가치체계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전략적으로 폭력을 활용하는 것’이란 체제·가치 합의론은 폭력을 혁명의 당연한 요소로 취급한다. 혁명을 사회적 자원에 접근 가능한 다양한 집단이 조직적 차원에서 벌이는 권력경쟁으로 본 찰스 틸리의 정치갈등론도, 사회구조변동을 계급 간의 갈등으로 파악하는 테다 스코치폴의 계급갈등이론도 내적으로 모두 폭력을 혁명의 당연한 요소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렌트가 <혁명론>을 통해 혁명과 폭력의 습관적인 결합을 끊어내자고 제안한 이후, 많은 이들이 물리적 폭력 대신 ‘말’로 하는 혁명의 방법을 찾아왔다. 사실 ‘말’만큼 폭력 앞에 무력한 것이 있을까? 말은 오로지 ‘비폭력’과 ‘평화’ 속에서 그 힘을 지닐 수 있다. 2016년 12월 시민혁명의 위대함은 바로 말로 할 수 있는 혁명의 배경인 ‘비폭력’과 ‘평화’를 사회적 분위기로 정착시킨 데 있다. 그러나 ‘혁명’의 진정한 의미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면 불행히도 ‘시민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대한민국은 이 땅의 시민이 주인이라는 것을 제도적으로 확인시켜주지 않았다. 우리에겐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새로운 시작에 필요한 새로운 헌법을 쓰는 일이 남아 있다. 이 새롭게 쓸 헌법이야말로 바로 시민들이 말로 이루어내야 할 혁명의 마지막 과제다. 이 헌법이 우리가 대한민국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맺는 약속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과정을 제대로 완결 짓지 못한다면 12월 시민혁명은 거꾸로 되돌리는 행위로 남겨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