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 | 미국 인디애나대 경영경제학 박사과정
2024년 2월 현재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 간의 갈등이 치솟고 있다. 의사협회와 전공의들은 진료 거부, 사직 등의 집단행동을 통해 의사 수 증원을 반대하고 있으며 정부는 여론 조사 결과와 여러 국책기관의 연구를 근거로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갈등이 협의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의료소비자들이다.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여러 가지 표면적인 이유를 배제하면 과잉 공급으로 인한 경쟁과 수익 감소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시장에서 공급자들의 수가 증가하면 가격 경쟁이 심해져 서비스 공급자들의 수익이 감소하는가? 경제학의 한 파생 분파로 기업들의 행동과 시장 구조 등을 연구하는 ‘산업조직론’은 반드시 그렇게 되진 않는다고 얘기한다. 산업조직론은 공급자들이 증가해 시장 규모가 커지면 소비자들이 혜택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혜택이 어떻게 발생할지는 공급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경쟁하는지에 달려있다.
만일 시장의 ‘제품 공간’(product space)이 고정되어 있으면, 소비자들은 공급자들의 가격 경쟁을 통해 낮아진 가격의 혜택을 받는다(살롭, 1979년). 예를 들어, 우리 동네에 편의점이 1개만 존재하였다가 새롭게 1개가 더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편의점에서 제공하는 상품들은 꽤나 동질적인 상품들(식료품, 과자, 주류 등)로 구성되어 있어 제품 공간이 고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허니버터칩을 ㄱ편의점에서 구입하나 ㄴ편의점에서 구입하나 내가 느끼는 효용은 딱히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 공급자들의 경쟁은 정해진 제품 공간에 있는 소비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제품 공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제품 다양성을 통해 혜택을 받는다(딕시트와 스티글리츠, 1977년). 휴대전화 시장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고급 모델을 생산했던 애플과 삼성전자와는 달리 샤오미, 화웨이, 원플러스 등 많은 제조업체는 다양한 사양과 가격대를 갖춘 휴대전화를 생산하였다. 이러한 제품 차별화 전략은 원래라면 휴대전화를 구매하지 않았을 국가의 사람들 또한 휴대전화를 구매하게 만들었다. 즉, 새로운 기업들의 진입으로 제품 다양성이 증가하여 시장 전체가 확장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전달된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하면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공급자들의 증가)가 의료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결국 의료서비스 시장의 제품 공간이 확장될 것인지, 아닌지에 달려있다. 의료서비스 시장의 제품 공간을 예측해보기 전에 먼저, 같은 전문가 영역으로 공급자 수의 확대를 미리 경험했던 법률서비스 시장의 사례를 통해 의료서비스 시장을 예측해보고자 한다.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지금의 의대 증원 논란과 마찬가지로 변호사들과 변호사협회 측에서 여러 가지 주장이 제기되었다. 변호사들의 공급이 증가하게 되면, 과당경쟁으로 인한 변호사들의 “생존권”에 위협되거나(경향신문, 2005년 2월21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호사들 간에 불법을 저지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거나(법률저널, 2006년 12월8일), 로스쿨 변호사들의 품질이 사법고시 변호사들보다 낮아져 법률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것이라는(법률저널, 2007년 7월13일) 주장들이다. 실제로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우리나라 변호사들의 수는 2011년까지 매년 평균 770명의 변호사가 시장에 공급되었지만, 첫 변호사시험인 2012년 이후 매년 평균 1623명의 변호사가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2024년 현재 한국의 변호사는 생존권을 위협당할 정도로 소득이 낮아졌는가? 그렇지 않다. 국세청이 발간한 ‘2023 국세통계연보’의 ‘법무법인 및 개인 변호사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신고액’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의 법률시장 규모는 2012년 3조6천억원에서 2023년 8조1천억원으로 10년 동안 2배 이상 성장하였다. 또한 이를 전체 변호사 수로 나눠 변호사 1인당 평균 매출액을 계산하면 2억4623만원이고, 이를 10대 대형 법무법인(로펌)으로 한정하면 1인당 매출액은 평균 6억원대에 달한다.
만약 한국의 법률서비스 시장의 제품 공간이 고정되어 있어 로스쿨 제도 이후 정해진 종류의 법률서비스를 더 많은 수의 변호사들이 처리하고 있었다면 위와 같은 시장 확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법률서비스 공급자들의 증가로 과거 변호사들의 공급이 부족했던 사내변호사, 공공분야, 특수 전문분야 등으로 법률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었다고 해석하는 게 적절하다. 실제로 신규변호사 중에는 송무라는 전통 직역에 한정되지 않고 서비스업이나 정보통신(IT), 외교, 입법 등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한국일보, 2020년 11월2일). 변호사들이 사회 전체에 제공하는 서비스가 이전보다 다양화되어 제품 공간이 확장되고, 그로 인해 법률 전문가에 대한 수요시장도 같이 확대된 것이다. 변호사들이 진출 가능한 진로가 다양해지면서 여러 분야로의 이직이 빈번해지고, 이로 인해 로펌소속의 변호사들이 워라밸을 추구하기 위해 사내변호사로 이직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들이 변호사들을 유인하기 위해 급여와 상여 등의 인센티브를 상승시킨 결과이다. 이에 따라 로펌들은 다시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연봉을 증대시키고 있어, 로펌의 신입 변호사들의 초봉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법률서비스 시장의 사례는 의료서비스 시장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법률서비스 시장과 의료서비스 시장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상당히 비슷한 시장 구조를 갖고 있다. 단순하게는 두 시장은 모두 전문성과 교육수준이 높은 직업군으로 이루어져 있어 시장에서 고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수요측면에서는 두 시장 모두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수요가 탄탄하다. 공급 측면에서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공급량이 정해져 있다는 점으로 인해 시장균형 공급량보다 적게 공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공급량을 증대시켰을 때, 의료서비스 시장에서도 법률서비스 시장과 마찬가지로, 기존에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고용되지 않았던 곳에서 잠재수요가 발생하여 일자리가 증대되면, 제품 다양화로 시장 전체가 확장되는 방식으로 소비자 후생이 증가할 수 있다.
다시 의료서비스의 제품 공간으로 돌아가 보자. 의료서비스는 다친 곳을 치료하고 망가진 몸을 회복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의료서비스 공급자들은 자생적으로 본인들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를 확장해왔는데 미용 의료가 그 대표적인 예다. 보톡스, 피부 레이저 시술 등으로 대표되는 미용 의료 시술은 의사만 할 수 있기 때문 의과대학별로 10~20%의 학생들이 미용 의료를 선택한다고 한다(조선일보, 2023년 11월30일).
의대 정원 확대로 의사들의 공급이 늘어나면 의과대학이나 병원뿐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의사들에 대한 수요가 증대될 수 있다. 바이오제약 산업이나 의료기기 제조산업은 전문인력이 필요한 기술집약적 지식기반 산업이다. 이러한 분야에서 의사들이 갖고 있는 전문지식은 새로운 의약품이나 의료 기기를 개발하거나 임상 연구를 수행하는 등의 활동에 사용될 수 있다. 대표적인 분야로 유전자 공학, 디지털 헬스케어, 바이오 소재개발 등이 있다. 이러한 산업계에서 뛰어난 인재들인 의사들의 수요가 새로 생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제약회사의 의사들은 기존의 의약품을 사용하는 환자들의 치료와 관리를 지원하고 새로운 의약품이나 치료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회사 내외에서 의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의약품의 개발 및 관리에 기여할 수 있다. 다른 분야로는 보건 정책에서도 의사들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 정책입안자들이 알지 못하는 실제 의료계 내부의 쟁점이나 애로사항을 정부의 보건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는 등 공공 영역에서도 의사들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의료계에서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적어도 일반적인 대중의 관점으로는 의료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수입 감소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년 전 법조계의 주장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그 후 변호사들은 법률서비스가 닿지 못했던 많은 분야에 진출함으로써 시장을 외형적으로 성장시켰고 그 안에서 본인들의 시장가치도 높였다. 의료 시장에서도 의사들이 고용되지 않았던 분야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경우, 사회 전반의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 더 질 좋은 전문가들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현재까지의 시장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시장 변화를 예측해야 한다. 위 분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적절한 정책과 전략을 마련하여 의료서비스 시장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글 작성에 도움을 주신 익명의 변호사 한 분께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