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송병찬 | 한국연구재단 연구위원

한국은 과학기술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국가 중 하나다.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연구비 규모가 전체 예산의 4.9%인 29조8천억원에 이르고,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액까지 합치면 연 100조원이 넘는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하는 과학인프라 경쟁력에서도 한국은 2012년 세계 5위에서 2021년 2위로 올라섰다. 과학기술자들도 기대에 부응하려고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수치로 나타난 한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기대한 것과 사뭇 다르다.

정부가 작년 발표한 120개 중점과학기술의 기술 수준은 최고기술 보유국인 미국 대비 80.1% 수준이고, 기술격차는 3.3년이다. 2018년 76.9%, 3.8년에 비해 개선되었으나, 2010년 같은 조사에서 76.5%, 5.4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별 차이가 없거나 정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기술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논문의 국가별 점유율이 2020년 2.42%로 10년째 세계 12위에 머물러 있다. 같은 기간에 중국이 점유율 17.53%로 미국을 넘어 세계 1위가 된 것과 대조적이다. 국가별 인구 만명당 논문 편수는 스위스가 48.86편으로 1위이고 한국은 14.71편으로 28위이다. 논문의 질적인 수준을 나타내는 상위 10% 피인용 논문 수는 세계 14위, 상위 1% 논문 수도 13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막대한 투자를 하고, 연구자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무엇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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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로 봐야 하겠지만 세계적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원하고 한편으로는 이끌어 가는 연구 행정 및 정책 전문가 역시 국제적 수준이 돼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 분야의 국제 저명 학술지로 인정받고 있는 <연구정책>(Research Policy)지에 지난 20년(2000~2019년) 동안 게재된 2577편 논문을 분석해 보았다.

한국인 저자 논문은 전체의 1.8%인 47편으로 국가별로는 19위였다. 미국과 영국이 각각 26.5%와 23.4%로 1, 2위였고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가 10% 수준에서 그다음을 차지했다. 논문이 인용된 횟수를 보면 전체가 한편당 약 67회가 인용됐지만, 한국인 저자의 논문은 약 62회가 인용되어 평균을 밑돌았다. 기관 유형별로는 대부분 대학에서 창출되어 국책 연구기관 논문은 미미했고, 국가별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미국 연구자와의 공동연구에 편중되어 있었다. 문서 유형도 학술논문이 95% 이상으로, 긴급보고, 사설, 비평 등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학술지에 게재하는 전체적인 경향과 다른 특성을 보였다.

이를 통해,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 분야 전문가들은 국제적 학술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국가의 최신 정책동향을 파악하거나, 우리나라의 정책을 소개하고 폭넓게 의견을 들어서 다시 정책에 반영하는 활동이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 과학기술이 변화와 문제 해결의 중심이자 국력의 원천이 된 시대이다. 투자 효율성을 높이고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비와 과학기술자들의 노력 외에도 세계를 무대로 교류 협력할 수 있는 과학기술 정책의 소프트 파워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