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마치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1호기에서 80m 떨어진 낭떠러지까지 다가가자 수소 폭발로 지붕이 날아간 1호기의 모습이 드러났다. 2호기와 3호기는 총탄과 포탄을 맞은 것처럼 벽면 곳곳이 패어 있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난 지 6년이 넘었지만 후쿠시마원전 폐로는 여전히 거의 불가능한 임무로 남아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첫 핵발전소인 고리원전 1호기 폐로가 결정됐지만, 후쿠시마원전의 폐허는 원전이 대재해에 취약하다는 사실과 원전을 폐로할 확실한 방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증언하며 서 있는 듯했다.
일본 포린프레스센터(FPCJ)와 외무성이 진행한 프레스투어에 참가해 살펴본 후쿠시마 제1원전은 겉보기에는 이전보다 상당히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과거 취재진이 원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입어야 했던 전신 보호복 대신 지금은 평상복 위에 안전 조끼를 덧입고 마스크와 보호안경, 납이 들어간 안전화를 착용하게 됐다. 후쿠시마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히로세 다이스케 과장은 “(오염 제거 작업이 많이 진행돼서) 제1원전 부지 350만㎡ 중 95%가 가벼운 보호장구로 작업이 가능한 그린존이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1원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방사선량은 아직도 높았다. 1~3호기 80m 앞 낭떠러지에서 측정한 선량은 시간당 20μ㏜(마이크로시버트) 정도였다. 시버트는 방사선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측정하는 단위인데, 서울의 평균 방사선량은 시간당 0.1μ㏜ 정도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도 가장 방사선 양이 많은 곳으로 꼽히는 원자로 2호기와 3호기 사이를 취재진을 태운 버스가 통과하자 버스 안 선량이 시간당 275μ㏜까지 치솟았다.
이곳에서 매일 생성되는 대량의 오염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곳곳에 높이 약 15m의 거대한 물탱크가 늘어서 있다. 지하수가 원전 내부로 흘러들면서 만들어지는 오염수를 보관하기 위해서다.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줄이기 위해 지하수를 빨아올리는 우물을 설치해 오염수 생성량을 하루 400t에서 150t으로 줄였다고 설명했지만 오염수 생성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있다. 오염수는 1000~2000t짜리 탱크 900여개에 담겨 있고, 지난달말 기준으로 99만t이 보관되어 있다. 도쿄전력은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도록 육지 부분에는 땅을 얼려서 오염수 유출을 차단하는 동토벽을 만들고 있으며, 바다와 접한 부분에는 콘크리트 등으로 차수벽을 만들었다. 다만 원전 내부와 외부 수위 차이로 인해 한꺼번에 오염수가 밖으로 유출될 우려 때문에 동토벽은 아직 완전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염수 최종 처리 방법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도쿄전력 홍보실 오카무라 유이치 부장은 “기술적으로는 보관중인 오염수를 정화한 뒤 증발시키는 방법, 바다로 흘려보내는 방법 등이 있으나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며 “후쿠시마원전이 직면한 지하수 오염 문제는 체르노빌이나 스리마일 원전 사고에서는 없었던, 인류가 처음 직면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과제인 폐연료 추출 작업은 더욱 난제다. 멜트다운(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돼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던 4호기의 폐연료 추출 작업은 끝났지만, 멜트다운이 일어난 1~3호기는 이제 시작 단계다. 특히 1호기와 2호기는 올해 2~3월에야 로봇을 이용한 내부 조사가 일정 부분 이뤄졌으나 강한 방사선량 때문에 로봇이 고장을 일으켰다. 원전에서 차량으로 30분 떨어진 원격기술개발센터에선 폐로 작업을 위한 로봇 개발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연구 중이다.
후쿠시마현청 직원들과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후쿠시마현이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며 원전도 비교적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원전 폐로까지 갈 길은 멀고도 멀어 보였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까지 30~40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후쿠시마/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