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신문>
<요미우리신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일본 기자)

“한국의 내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코멘트하는 것은 삼가려 한다.”(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광고

1일 오전, 일본 정부의 정례 기자회견. 이날 오전 열린 각의(한국의 국무회의)의 결정 내용에 대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설명이 끝난 뒤, 일본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첫 질문.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이었다. 난처해진 스가 장관이 “코멘트를 삼가려 한다”며 즉답을 피하자 곧바로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역시 최순실 사태에 관한 질문이었다.

광고
광고

-이번 사태로 인해 지난해 말 위안부 합의 이행과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데.

“먼저 한국의 내정에 관한 사항에 대해 정부가 코멘트 하는 것은 삼가려 한다. 그러나 어쨌든 일·한 각각이 (지난 12·28) 합의를 책임을 갖고 시행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합의의 착실한 실시를 위해 한국 정부와 분명히 연계를 하고 싶다.”

광고

-연내 일·중·한 정상회의 실시가 불투명해졌다는 한국 언론의 지적이 있는데.

“(그에 대해선) 어떤 영향도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는 다른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한국의 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스가 관방장관이 하루에 두번 총리관저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기자회견을 한다. 이때 일본 기자들이 묻는 질문을 통해 현재 일본이 관심을 기울이는 현안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일본 기자들이 한국의 정세에 대해 무려 3개의 연속 질문을 던졌다는 것은 일본이 이번 사태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광고

일본은 왜 그렇게 한국의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이유는 간명하다. 박근혜 정권이 이대로 쓰러질 경우 지난해 12·28 합의 이후 이어진 한국의 외교노선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은 2013년 2월 취임 이후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대일 외교의 전면에 내걸고 일본과 치열한 대립을 이어왔다. 그러나 2015년 봄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개입에 못 이겨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그해 8월 ‘아베 담화’를 받아들이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12·28 합의를 수용했다. 한국 정부는 이후 온갖 무리수를 써가며 12·28 합의 이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한-미-일 3각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로 ‘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결심했다. 박 정권이 쓰러지면 이 노선이 크게 흔들리게 되고 이는 일본 국익에 매우 큰 타격이 된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사설을 통해 이 같은 우려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1일 ‘외교의 정체를 우려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은 북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큰 역할을 담당하는 나라다. 내정의 혼란이 외교의 정체를 불러오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얼핏 보면 한국의 상황을 걱정하는 듯한 문장이지만, 우려의 핵심은 이번 사태로 일본의 국익이 침해될지 여부에 맞춰져 있다. “박 대통령은 강한 위기감을 갖고 일·미와의 연대 강화를 추진해 왔다. 미국과는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일본과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의 교섭 재개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 두 현안은 모두 국내적인 반대론이 강하다. 대통령의 구심력이 이렇게 떨어진 상황에서 어려운 국내 조정을 추진해 갈 수 있을까.”

<아사히신문>도 마찬가지다. 신문은 “일-한 사이엔 지난해 말 위안부 합의에 근거한 재단의 운영과 군사정보의 보호를 둘러싼 협정의 체결 등의 과제가 있다. 박 대통령의 지도력이 오랜 시간 흔들린다면 이런 과제의 행방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국익에 합치하는 박근혜 정권의 외교·안보 노선은 한국의 국익과도 일치할까? 한-미-일 3각동맹을 강화해 북한을 고립시키고 중국과 대립하는 노선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최순실 사태가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는 또다른 질문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