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해프닝일까, 중국과 미-일 동맹의 본격 갈등을 알리는 신호탄일까.
중국이 중-일 간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접속수역’(영토로부터 24해리 이내 수역)에 해군 함정을 진입시키면서, 그 배경을 둘러싼 다양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9일 0시50분. 일본 영토 최서단인 이시가키섬에서 북서쪽으로 170㎞ 떨어진 센카쿠열도 구바섬 주변을 순찰하고 있던 해상자위대 호위함 ‘세토기리’(배수량 3550t)의 레이더에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중국 해군의 장카이Ⅰ급(만재 배수량 3963t) 프리깃함이 구바섬 북동쪽 해역을 따라 일본이 주장하는 센카쿠열도의 접속수역 안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해양경찰이 센카쿠열도의 접속수역에 진입한 적은 많았지만, 해군이 직접 이런 이동 궤적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긴장한 세토기리는 이 사실을 즉시 통합막료감부(한국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에 보고한다.
긴급 보고를 접수한 아베 신조 총리는 ‘미국 등 주변국과 긴밀히 연계해 경계·감시에 전력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놓는다. 해상자위대의 잇따른 퇴거 명령에도 중국 해군 함정이 움직이지 않자 사이키 아키타카 외무성 사무차관은 ‘새벽 2시’에 청융화 중국대사를 외무성으로 긴급 초치했다.
사이키 차관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중국 군함에 몇번이고 퇴거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청 대사를 불러 ‘일방적으로 긴장을 높이는 행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청 대사는 “댜오위다오는 중국의 영토로 항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지만, “중국도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항의가 있었다는 것을 본국에 전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 함선은 두 시간 정도를 해당 수역에 머물다 오전 3시10분께 센카쿠열도의 동쪽 끝인 다이쇼섬 북북서 방향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접속수역에서 벗어났다. 중국 국방부는 9일 오후에야 “중국 군함이 자국의 관할 해역을 항해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것으로 다른 나라가 뭐라 할 권리가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일본은 중국 해군의 이번 움직임에 대해 공식적으론 “앞으로도 의연하고 냉정하게 대응해 나가겠다”(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9일 밤 아베 총리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는 등 중국의 속내를 확인하기 위해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 7일엔 중국의 젠-10 전투기가 동중국해 공해상을 정찰하던 미군 정찰기(RC-135)를 향해 이상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 미 태평양군이 항의하는 사건도 있었다. 일부 일본 언론들은 6~7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미-중 간 전략·경제대화가 남중국해 문제 등에 대해 이견만 확인한 채 끝나자, 중국이 불만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일련의 군사적 움직임을 보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악재는 또 있다. 일본이 10일부터 17일까지 나가사키현 사세보에서 오키나와 동쪽 해안을 잇는 동중국해 해상에서 미국과 인도 해군을 불러들여 미-인도 연합 군사훈련인 ‘말라바르 훈련’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 훈련에는 일본의 준항모 ‘휴가’와 미 항모의 참가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번 사건이 중-일 간 의사소통 부재에서 오는 해프닝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 해군에 앞서 이 해역에 모습을 드러낸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해군 함정 3척의 동향이다. 러시아 해군 함정은 8일 밤 9시50분께 구바와 다이쇼섬 사이 수역에 진입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군사 전문가 등을 인용해 “4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해역에서 훈련을 끝낸 러시아 해군 구축함 등이 블라디보스토크로 귀환하는 도중 센카쿠열도 주변 해역을 지나자, 중국 해군이 이에 대한 경계 감시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