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나비 등 대학생들이 위안부 문제 재협상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및 소녀상 이전 반대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해 12월 3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나비 등 대학생들이 위안부 문제 재협상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및 소녀상 이전 반대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소녀상) 철거 문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국-일본 정부의 12·28 합의 내용에 들어 있는지를 두고 양국 정부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7일 ‘소녀상 철거’가 12·28 합의에 사실상 포함된다는 공식 견해를 밝혔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소녀상 철거는 정말 합의에서 전혀 언급도 안 된 문제”라고 발언한 데 대한 정면 반박이어서 앞으로 12·28 합의 이행 및 한-일 관계에 상당한 파장이 일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중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 등 합의 이행에 속도를 내려던 양국 정부의 앞길을 돌출 악재가 가로막고 나선 형국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 부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의 관련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자 “(소녀상 철거가) 합의의 전제냐고 한다면 그런 세부적인 것까지 하나하나 확인한 것이 아니지만, 이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해) 다음 세대로 끌고 가지 말고 일-한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가자는 게 합의의 큰 의미니까 그런 의미의 세부적인 것의 하나로서 (소녀상 철거 문제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고 나는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녀상 철거’가 12·28 합의 내용에 들어 있으며, 이 문제가 본격적인 합의 이행의 사실상 ‘전제조건’이라는 취지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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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우다 부장관의 이날 브리핑은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대신해 이뤄진 것이어서 형식상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를 밝히는 자리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대변인 브리핑이나 논평 등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그간 거듭 밝혀온 바와 같이,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으로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녀상 철거’ 문제는 한국 정부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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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부의 이런 극단적으로 엇갈린 ‘해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합의 직후에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소녀상은 이전될 것으로 인식한다”고 거듭 밝히는 등 ‘소녀상 철거’ 여부가 12·28 합의 ‘해석 투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는 관련 문구의 모호함에서 기인하는 것이자 12·28 합의의 취약성을 거듭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양국 정부가 합의한 문구는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한다”로, 서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외교적 모호성’을 담고 있다.

한-일 외교당국은 논란 끝에 ‘소녀상 철거’ 문제가 양국 관계의 현안임을 공론화한 수준에서 일단 멈추기로 ‘외교적 묵계’를 맺고 한동안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소녀상 철거는 합의에서 언급도 안 된 문제”라고 못을 박자, 일본 정부가 자국 보수 여론을 의식해 외교적 부담을 무릅쓰고 공개 반론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 외무성은 이날 밤늦게까지 한국 언론을 상대로 “하기우다 관방 부장관의 발언이 와전돼 전해지고 있다”며 외교적 파문을 최소화하려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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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번 논란을 통해 12·28 합의와 ‘소녀상 철거’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의 ‘속내’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다. 요약하면 한국은 ‘합의 이행-소녀상 존치’, 일본은 ‘합의 이행-소녀상 철거’인 셈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한국 시민사회는 ‘소녀상 철거 반대, 합의 무효화’를 촉구하고 있다.

다음은 하기우다 관방부장관의 답변 전문이다.
“어제 보도에 대해선 알고 있다. 이번 합의에 있어, ‘한국 쪽이 일본 정부가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되어 있다. 한편, (소녀상 철거가) 합의의 전제인가라고 하다면, 그런 세부적인 것에까지 하나하나 확인한 것이 아니라. 역시 이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다음 세대로 끌고 가지 말고 서로 일·한의 신시대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가자는 게 일·한 합의의 큰 의미니까, 그런 의미의 세부적인 것의 하나로서 (소녀상 철거 문제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소녀상 철거를 설득하기 위한) 국민 설명에 노력을 하고 있는 단계니까 양 정상간에 확인한대로 일·한 각각이 책임을 갖고 실행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훈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