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대응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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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초동 대처 못해 여론 불만 쇄도 부시 정부 후속책 발표했지만 조처 미흡해 의회가 독자 입법 재난관리청 기능 강화 등 보완

2005년 8월 말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힌다.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1833명, 재산피해도 사상 최고치인 1080억달러를 기록했다. 뉴올리언스는 도시가 물에 잠겼을 정도로 타격이 컸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우왕좌왕했다. 사태 초기 부시 대통령의 측근인 마이클 브라운 연방재난관리청장이 현장 지휘를 맡았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흘 만에야 현장을 찾은 부시 대통령은 “탁월한 대응을 했다”고 칭찬했다. 여론의 불만은 폭발했다. 브라운 청장은 보름 남짓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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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주택도시부에 딸린 외청으로 출발한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1979년 독립기구로 격상됐다. 재난 대비·대응·복구·방지 등 4대 업무를 총괄하는 ‘포괄적 재난 관리’가 목적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집권 초기인 2001년 봄부터 재난관리청 업무의 초점을 자연재해에서 테러 대비 쪽으로 바꿨고, 9·11 테러 이후엔 아예 신설된 국토안보부로 편입시켰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2007년 3월 펴낸 보고서에서 “이로 인해 재난관리청의 재난 대비 능력이 현격히 떨어졌다. 재난 관리 업무의 기능과 예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 것이 카트리나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브라운 청장 사임 이후에도 비판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부시 행정부는 2005년 10월 재난 대응체제 강화 방안을 밝혔다. 재난관리청장이 국토안보부 재난관리 담당 차관을 겸직해, 재난 대응·방지·복구 등 3대 업무를 맡도록 했다. 재난 대비 업무는 새로 꾸려진 국토안보부 산하 차관급 재난대비위원회(PD)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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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 의회는 행정부의 조처가 미흡하다고 보고 독자적으로 입법에 나섰다. 이른바 ‘포스트 카트리나 법’으로 불리는 재난관리개혁법안은 2006년 10월 의회를 통과했다. 재난관리청장은 부장관급으로 격상돼, 재난 관련 모든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국토안보부 산하 기관이긴 하지만, 조직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했다. 또 재난관리청의 10개 지역본부의 기능·책임을 강화하는 한편 연방정부와 주정부, 기초자치단체 간 재난 대응 업무 조율을 위해 국가통합센터(NIC)를 신설했다. 행정부의 ‘빈 자리’를 의회가 메운 셈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2년 10월 말 미 동부 일대를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는 카트리나 이후 최악의 자연재해였다. 카트리나처럼 30시간 넘게 강풍과 폭우가 이어졌다. 재난관리청의 초기 대응에 대해 공화당 쪽도 “적절한 대응으로 화를 줄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열흘 남짓 만에 치러진 대선에서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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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내각, 1년3개월간 원인 검증·보고서 내 국회·민간, 별도 조사위로 정부 압박 원전 감시기구 독립성 높이고 안전기준 강화해 시스템 바꿔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발표한 세월호 관련 ‘대국민 담화’는 정부가 한달 만에 내놓은 ‘하향식 처방’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정부와 의회, 민간이 참여해 오랜 시간을 들여 내놓은 사고 수습 대책과 대조적이다.

일본에선 사고가 터진 지 두달 만인 2011년 5월 내각부 산하에 ‘도쿄전력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 사고조사·검증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는 7달 뒤인 2011년 12월 중간 조사보고서를 내놓은 뒤, 다시 7개월이 지난 2012년 7월께 최종 보고서를 내놨다. 사고 원인을 조사·검증하는데 1년3개월의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이밖에 일본 국회와 민간에서도 별도의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정부의 조사 활동을 감시하고 압박하는 구실을 했다.

당시 만들어진 3대 조사위원회의 가장 큰 목적은 ‘책임 추궁’이 아닌 ‘사실 규명’이었다. 원전 사고가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의 관리를 맡았던 도쿄전력만의 실수였다기보다는 일본 정부의 총체적 위기관리 시스템과 원전을 둘러싼 정계와 재계의 유착관계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결합해 일어났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도쿄전력의 말단 사원부터 당시 간 나오토 총리까지 사고 처리에 관여했던 이들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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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2년 2월에 나온 민간 보고서는 간 나오토 총리와 총리관저의 대응에 초점을 맞춰 주목받았다. 이를 보면, “사고 대응 국면에서 호통을 치는 등 간 총리의 개성이 혼란과 마찰의 원인이 됐다” “(총리의 태도가) 관련자를 위축시키는 심리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등의 지적이 나온다. 위기관리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총리가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총리관저의 허둥대는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 <관저의 100시간>(2012년)이라는 책도 나와 있다.

일본 정부는 여러 보고서의 지적을 받아들여 2012년 9월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던 원자력규제위원회를 ‘원전 마피아’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성 아래로 옮기는 등 원전 감시기구의 독립성을 높였다. 원전의 ‘안전 기준’도 대폭 강화했다. 사고 원인이 ‘쓰나미 침수로 인한 전원의 완전 소실’ 등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은 위기관리 시스템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강화된 새 기준에 맞춰 재가동 신청을 한 원전에 대한 안전검사를 진행 중이다. 또 앞으로 일본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수도 바로 아래 지진(수도 직하 지진) △남해 트라프(해분) 지진 △후지산 분화 등 대형 재해에 대한 평가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재작성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 취임 뒤 원전 재가동이 공식화되는 등 지난 사고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