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과 중국이 연대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한 것을 강경한 어조로 비난했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안 의사의 의거 장소인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 기념관이 개관된 데 대해 “안중근에 대한 일본의 견해는 우리나라(일본)의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한·중 양국에 누차에 걸쳐 우리 견해를 전달해왔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안중근에 대해선 일본과 한국이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지난 세기에 발생한 일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에 근거해 한·중이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움직이는 것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하라 준이치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안 의사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19일 한·중의 주일대사관 공사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항의한 사실이 확인됐다. 스가 관방장관은 지난해 11월에도 안 의사를 ‘범죄자’라고 지칭해 한국 정부의 큰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는 일본 언론의 평균적인 논조와도 크게 다르다. 20일치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면,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주요 언론이 모두 안 의사를 ‘한국(또는 조선)의 독립운동가’라고 표현했고, <산케이신문> 정도만 ‘이토 총독을 암살한 조선반도 출신 안중근’이라는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또 기념관을 만든 한·중 양국 정부에 대한 비난보다 “중국이 역사 문제에서 한국과 연대를 강화해 일본에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가 나타난 것”(요미우리), “애초 안중근 기념비 건설에 소극적이던 중국 정부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이후 급격히 태도를 바꿔 ‘고 사인’을 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산케이) 등 사태의 배경 분석에 치중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은 논평을 내 “이토 히로부미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짓밟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해악을 끼친 원흉”이라며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방장관이라는 인사가 그와 같은 몰상식하고 몰역사적인 발언을 한 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일본 지도급 인사들은 하루속히 제국주의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겸허한 마음으로 역사를 마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박병수 선임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