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정보센터’ 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전시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정보센터’ 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전시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20일 오전 일본 도쿄 신주쿠구 총무성 제2청사 별관 1층. 이곳엔 일본 정부가 2015년 군함도(하시마)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시설과 관련한 ‘모든 역사’를 기억하겠다고 약속한 뒤 만든 산업유산정보센터가 자리해 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선 널리 홍보해야 할 시설이지만, 어쩐 일인지 3년 넘게 사전 예약을 해야 갈 수 있고 내부 사진은 전혀 찍을 수 없는 등 폐쇄적인 운영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갑갑한 시설’에 다시 관심이 집중된 것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이하 위원회)가 14일 군함도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취해야 하는 ‘후속 조처’에 대한 결정문에서 2년 전 일본에 쏟아냈던 비판 문구를 대거 삭제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이런 결정을 내리며 센터 내 일부 전시 내용이 바뀌었다는 점을 들었다. 한겨레는 전시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20일 오전 센터를 찾았다.

센터(면적 1078㎥)는 크게 3개의 전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일본의 산업유산 개요(1구역)와 산업화 모습(2구역)을 담은 전시를 지나면 한·일이 8년째 갈등을 겪고 있는 군함도 관련 코너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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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한국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2015년 7월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한국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위원회는 결정문에 방문객들이 정보무늬(QR코드)를 통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한·일 정부 대표가 했던 발언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점을 긍정 평가했다. 실제 큐알코드를 찍어보니, 2015년 7월 하시마 등의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위원회 회의 장면이 동영상으로 연결됐다. 일본 대표인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와 한국 대표인 최종문 유네스코 협력대표의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사토 대사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일본어 자막이 없이 영어 발언만 나와 방문객들이 얼마나 이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큐알코드 바로 옆에 새로 설치된 ‘희생자를 기억에 남기다’라는 제목의 티브이 모니터 전시도 유네스코가 인정한 부분이다. 하시마 탄광이 작성한 ‘보안월보’와 ‘보안일지’를 기반으로 1941년 11월부터 1944년 11월까지 낙반 사고 등으로 일본인 25명, 조선인 15명, 기타 4명 등 44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을 보여준다. 당시 탄광의 위험한 노동 환경을 언급하며 일본인이나 조선인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 전시다. 일본 정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가혹한 조건에서 노역한 조선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약속했는데 이것이 탄광 노동으로 사망한 모든 사람으로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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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강제동원, 가혹한 노동환경, 극심한 차별 등을 부정하는 듯한 전시물은 여전히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큼직하게 전시돼 있었다. 마쓰모토 사카에 ‘하시마 도민회’ 명예회장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 연대감이 상당히 강했다”는 발언이나, 재일동포 2세 스즈키 후미오의 “하시마에 있을 때 귀여움을 받았다”는 증언 등이다. 산업유산정보센터 누리집
조선인 강제동원, 가혹한 노동환경, 극심한 차별 등을 부정하는 듯한 전시물은 여전히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큼직하게 전시돼 있었다. 마쓰모토 사카에 ‘하시마 도민회’ 명예회장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 연대감이 상당히 강했다”는 발언이나, 재일동포 2세 스즈키 후미오의 “하시마에 있을 때 귀여움을 받았다”는 증언 등이다. 산업유산정보센터 누리집

오히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고 역사를 왜곡한 전시물이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효고현 하리마 조선소에서 1941~1945년 사이 일한 조선인 징용 노동자 김태조의 급여봉투 일부와 월급 자료였다. 김씨의 경우 “가장 급여가 많았던 1945년 4월 실수령액으로 214엔을 받았다. 참고로 당시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젊은 관료의 기본급이 75~100엔이었다”고 적혀 있다. 조선인 징용 노동자의 대우가 일본 엘리트 공무원만큼 좋았다는 뜻이다. 이 내용이 얼마나 ‘실체적 진실’을 담고 있는지도 검증이 필요하지만, 하리마 조선소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에 포함도 안 된 곳이다. 엉뚱한 사업장의 월급봉투를 가져와 노동조건이 좋았다고 주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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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을 구석구석 둘러봤지만 조선인 강제동원, 가혹한 노동 환경, 극심한 차별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군함도에서 겪은 참혹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이를 부정하는 듯한 전시물이 여전히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큼직하게 전시돼 있었다. 마쓰모토 사카에 ‘하시마 도민회’ 명예회장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 연대감이 상당히 강했다”는 발언이나, 어린시절 군함도에 살았던 재일동포 2세 스즈키 후미오의 “하시마에 있을 때 귀여움을 받았다”는 증언 등이다.

사토 대사의 발언을 비판하는 내용도 눈에 띄었다. ‘군함도는 우리의 고향입니다’라는 전시물에는 2015년 사토 대사의 발언과 관련해 “정확히 반박하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 총무성 제2청사 별관 1층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 건물 모습. 도쿄/김소연 특파원
일본 도쿄 신주쿠구 총무성 제2청사 별관 1층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 건물 모습. 도쿄/김소연 특파원

전시 내용이 개악됐는데도 유네스코가 일본의 노력을 긍정 평가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역사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일방적 양보’ 기조를 유지하며 일본의 역사 왜곡을 시정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는 외교부뿐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나서 강경한 자세로 일본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려 애썼다. 한국 정부가 손을 놓는 사이 일본은 올 1·8월 유네스코 관계자들을 두번이나 도쿄로 초청해 자신들의 노력을 적극 설명했다. 유네스코 관계자는 이번 결정문과 관련해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에 “최근 한-일 관계 개선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쪽은 전시 내용 변경 등과 관련해 한국 쪽과 긴밀하게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멍하게 수수방관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한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쪽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조선인) 강제노역 증언 등이 담길 수 있도록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