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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으로서 죄송”…공무원 하다 27년째 강제동원 소송 지원

등록 :2022-09-13 07:00수정 :2022-09-13 19:26

[인터뷰] ‘일본 강제동원’ 문제 해결 나선 야노 히데키

일본 기업의 사과·기금 출연 있어야
옛 신일본제철·일본강관·후지코시
1997~2000년 위로금 건네며 화해
일 정부도 ‘협정 위배’ 언급 안해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 도쿄/김소연 특파원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 도쿄/김소연 특파원

“그동안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 사이에 세 차례 화해가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1965년 일-한 청구권 협정에 위배되니까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다.”

꽉 막힌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0년 가까이 한국인 피해자·유족들이 진행해온 전후보상 소송을 지원해온 일본인 활동가가 입을 열었다. 야노 히데키(71)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6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관계 개선을 위해 넘어야 할 큰 산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역사 문제가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면서 일본의 성의 있는 대응을 거듭 호소했다.

그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최종적이고 완전한 해결’이라고 쓰여 있기는 하지만 (복잡한 역사 갈등을 풀기 위해 일본은) 실제로는 그렇게 대응하지 않았다”며 “원폭 피폭자, 사할린 잔류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여러 문제에서 일본 정부가 여러 조치를 강구해왔고, 일본 기업들도 화해에 나선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하는 것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으로 해결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피고 기업의 사과와 기금 출연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주도한 민관협의회가 4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논의를 끝냈다. 아직 구체 해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끝까지 일본 기업이 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이들에겐 ‘제3자에 의한 변제’(채권자의 동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단 제3자가 채무자와 약정을 맺고 일단 채무를 변제하는 것)가 유력시되고 있다.

“단지 ‘현금화’를 피하려 그렇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1·2차 민관협의회에 참여했던 원고 변호사들의 주장대로 피고 기업의 사과와 기금 출연이 있어야 한다. 20~30년에 걸친 법정 투쟁을 통해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으로 해결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도 최근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나 ‘일본의 사과를 원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본 기업의 사과와 기금 참여가 필요하다.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있나.

“솔직히 비관적이다. 다만 기시다 총리도 대국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지금의 동아시아 정세다. 미-중 대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일·미·한이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러·북에 대한 대항을 고착화시키기보다 (긴장 완화를 위해) 중재를 해야 한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일·한이 관계를 긴밀히 하려면,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 현안 문제를 풀어야 한다. 기시다 총리도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여론은 어떤가.

“일본 언론이나 여론도 지금과 같은 악화된 일-한 관계가 좋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이 양보해 관계를 개선하는 것에는 부정적이다. 지난 청구권 협정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생각이 강하다. 또 2015년 일-한 위안부 합의를 한국이 일방적으로 뒤집었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이 먼저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위안부 합의로 불신이 커졌다. 청구권 협정이야 먼 옛날 일이니까 잘 모르지만 위안부 합의는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 일본 정부도 큰 문제였지만 한국 정부도 적절한 대응은 아니었다.”

―한국에선 청구권 협정으로 역사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협정으로 역사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협정에 청구권과 관련해 ‘최종적이고 완전한 해결’이라고 쓰여 있기는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원폭 피폭자 문제가 있다. 1978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원폭으로 생긴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에서 일본으로 밀항한 손진두씨에 대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인정했다. 원폭 피해자 이외에도 사할린 잔류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에 대해 일본 정부는 여러 조치를 강구해왔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 피해자로부터 소송을 당한 일본 기업 중에 3곳은 화해에 나서기도 했다.”

―실제 1997년(옛 신일본제철), 1999년(일본강관), 2000년(후지코시)에 일본 기업과 한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 사이에 위로금 지급 등 세번의 화해가 있었다.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가.

“몇가지 요인이 있었다.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서 패소했지만 법원은 기업이 저지른 불법행위 자체는 인정했다. 예를 들어 일본 법원은 지금도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 중인 ‘후지코시’가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등의 말로 속여 10대 소녀들을 강제연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피해자들과 지원단체 등이 기업에 책임을 촉구했다. 기업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화해가 이뤄질 때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1998년 일-한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에서 보듯, 일본 정부가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를 표명한 시기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기업들도 안심하고 화해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도 청구권 협정에 위배되니까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았다. 2012년엔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주주총회에서도 경영진은 강제동원 피해자 재판과 관련해 ‘법을 지켜야 한다. 판결이 나오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청구권 협정으로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변호인들이 2018년 11월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요청서와 피해자 4명의 사진을 들고 도쿄 일본제철 본사로 향하고 있다. 가장 왼쪽이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 &lt;한겨레&gt; 자료사진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변호인들이 2018년 11월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요청서와 피해자 4명의 사진을 들고 도쿄 일본제철 본사로 향하고 있다. 가장 왼쪽이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의 태도가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아베 전 총리는 역사수정주의 입장에 서서 무라야마 담화, 일-한 파트너십 선언을 실질적으로 쓸모없게 만들었다. 7년8개월이나 장기집권을 했고, 그사이 일본 사회의 공기(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속히 발전한 것도 더는 일본이 양보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만든 것 같다. 앞서 말했지만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한국 정부가 사실상 파기한 것도 여론에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일본 정부가 호응하지 않으면, 결국 ‘현금화’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현금화가 강행되면 어쨌든 그 책임은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일본 기업과 이를 방해한 일본 정부에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현금화가 좋은 결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고들은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왔다. 강제집행 절차를 통한 현금화는 사과나 배상의 의미보다 그저 돈이 지급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세차례 화해 사례가 있었던 만큼, 일본 기업과 피해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 당시엔 기업의 자주적인 판단이 인정됐다. (일본 활동가들도) 정부를 상대로 과거에는 용인을 해줬는데 지금은 왜 안 되냐고 계속 추궁해 나갈 예정이다.”

―27년 동안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누구보다 복잡한 마음일 것 같다.

“2018년 10월 대법원에서 승소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그러면서 눈물이 나왔다. 1997년부터 싸우기 시작했으니 대법원 판결까지 21년이 걸렸다. 여운택·신천수·김규수 할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 너무 억울했다. 여운택 할아버지는 일본제철로부터 받지 못한 임금, 저축에 대해 ‘저건 내가 청춘을 걸고 일한 증거다. 저 돈이 있었으면 소를 여러 마리 살 수 있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피해자들은 강제노동을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큰 상처를 받았다. 한국의 대법원 판결로 긴 싸움이 끝날 줄 알았는데, 벌써 4년째다. 이춘식 할아버지 등이 한을 풀 수 있도록 계속 싸울 것이다.”

야노 히데키는
야노 히데키(71)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27년째 강제동원 피해자의 소송을 돕고, 일본 정부·기업에 사죄와 배상·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일본의 활동가다. 1995년 도쿄 지방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하던 그는 일본제철 가마이시제철소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이 제기하는 소송을 지원해달라는 부탁을 받자, “일본인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들어 이 문제에 뛰어들었다. 이후 일본 내 소송뿐만 아니라 한·일을 오가며 집회, 기자회견, 심포지엄 등을 주도하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었던 2010년엔 친일청산에 앞장섰던 고 임종국(1929~1989)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제4회 임종국상을 수상했다. 당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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